유란시아를 만나는 사람들   16-05-08
사트바   419
 

자유 게시판에서 새벽아침님의 글을 읽고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이 새삼 떠오릅니다.

돌아보면 너나없이 크고 작은 불만과 좌절과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삶이 보입니다. 고집멸도의 진리의 길을 찾아서 떠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고 어쩌면 영원불멸의 절대계로 점핑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너나없이 지금도 수행과 정진의 길에 들어서곤 합니다.

그러한 길에서 오랫동안 아무 뚜렷한 성과도 없이 시간은 덧없이 흐르건만,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헛된 자각과 진리에 가까워진다는 도취와 깨달음의 길에서 여전히 정진하고 있다는 교묘한 자만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어느 날 까르르 웃는 어린아이의 순수하고 맑은 기쁨과 웃음을 보면서, 문득 나의 좌절과, 고통과 불만과 슬픔을 스스로에게 변명하기 위하여, 이 세상 모든 것을 고해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었지요. 그 맑고 순수한 웃음이 과연 36개 경계가 드러나고, 3세간의 고통으로 확장되는 108 번뇌의 씨앗일까 질문하게 된 것이지요.

즐겨 빠지는 허무론에서 본다면, 그런 질문조차 쓸데없이 마가 끼어드는 잡념이라고 여기면서, 곧 의식의 찌꺼기로 털어버립니다. 그리곤 다시 무념무상의 특효약을 들이마시고 지복과 평온에 잠기지요. 이런 질문이 반복되면 마취제도 점점 쎄야만 효과가 나타나듯이, 어떤 가르침도 경전도 더 이상 지속적인 효과가 없어지는 지경에 이르는데, 현실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삭발하기 전에는, 어쩔 수없이 귀와 눈을 괴롭히는 마귀의 속삭임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삭발한 사람도 후회의 고백으로 마치는걸 보면 답이 아닌 것이 확실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도저도 못하면 여러 형태로 포기적 삶을 사는 것이지요.

그 많은 순수한 기쁨과 사랑과 열정과 도전들이 고집멸도를 완성하는 108번뇌의 시작인지, 참된 삶의 축복인지 흔들리지 않는 현실 속에서의 해답을 찾아야겠지요. 그러다가 유란시아를 읽게 되었는데, 광명을 발견한 셈이지요. 그 모든 의혹과 방황과 혼란의 어두움이 서서히 걷혀지는 감동은 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책을 읽고, 참된 진리를 깨닫고, 참으로 오랫동안 헛 세월을 보냈다는 사실에 분노가 일어나야 마땅한데  어인 일인지 지금은 그 오랜 방황도 이 책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느낌입니다.

결국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소개를 받거나 우연히 눈에 띄어서 책을 만나는 아주 운이 좋은 분들도 있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진리를 찾아서, 해결되지 않는 마귀처럼 머릿속을 괴롭히는 진리에 대한 혼동을 정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분들일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운이 좋은 사람이나 고통 속에서 진리를 찾아 나선 구도자들이나 모두 다 개인 수호천사가 인도한 것이 틀림없겠지만, 이 책을 읽고 얻는 득과는 차이가 클 것이라고 봅니다.

오랜 수행을 찾아 나선 분들은 그 습관화된 에너지가 탄력을 받아 책의 진리를 깨닫고 열매를 거두는 에너지가 좀 더 활발할 것이지만, 어쩌다 행운으로 이 책을 만난 분들은 상대적으로 좀 더 각별한 각오와 도전이 없이는 마음에 감동을 주는 책으로 머물 수도 있겟지요.

앞으로도 이 책을 만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겠지만, 책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계시의 의미를 실감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찾는 구도자일 것입니다. 누구라도 이 책을 만날 수는 있지만, 누구나 다 읽은 것도 아니고, 누구라도 결심만 선다면 다 읽을 수 있지만, 누구나 다 광명을 발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광명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욕심, 분노, 어리석음이 쏟아지는 오온 십이처에서 서성거리지 않습니다. 절대 무상계와 연결되어 있는 현실 유상계에서 오온은 크게는 사랑으로 적게는 인내와 포용과 헌신으로 존재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빛이 비취니 어둠이 물러가도다" 수많은 경전에서 이 진리를 말하고 있지만, 시공간 차원부터 절대 차원에 이르는, 모든 광명을 아우르는 참 뜻은 계시로서 실감할 수 있습니다.

 

 
최경곤 16-05-09
답변  
아무런 걱정 근심 없는 행복한 삶이 보장되거나 행운만 계속되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불행일 수 있다는 글이 기억이 납니다. 사실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실제로 전혀 근심 걱정이 없을 수는 없겠지요.

살면서 크고 작은 고통을 만나지만, 요즘은 누구나 굳이 그런 어려움이나 고통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만큼 여러 가지가 풍요로운 시대입니다. 난관이나 도전이 닥쳐오면, 정신적 물리적 고통이 닥치기 전에, 지혜롭게 피하거나 포기하거나 빠져나갈 길이 기술적으로 제도적으로 많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런 도전으로 어쩌다 고통의 상처를 받았다 해도, 아주 자세하게 원인을 밝히면서 고통의 근본을 다스려주기 때문에,  막막한 심정으로 하늘만 쳐다보는 일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점점 잘 짜이고 인간의 지혜로서 서로 도우면서 뭐든지 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의미심장한 체험일 것입니다. 삶을 고통으로 보면서 그러한 불완전한 세상에서 빛을 찾아내는 수행은 진리의 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게으르고 나약한 사람의 심성이 진리를 찾기보다는 마음 치유의 기법에 만족하여 머무는 경우도 많이 있겟지요. 진리라는 빛이 다가오면,  어두워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주변의 실상들이 모두 드러나는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다면, 유란시아 책을 만나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리라 봅니다.
하나님과 하느님 
나에게 유란시아서 의 가르침 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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