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모두 밎지만, 도대체 뭘 하고 계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보통 사람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영원 무한하신 분이니까 우주 만물을 끝없이 창조하고 계시거나, 아니면 일단 창조를 다 끝내고 창조된 우주를 보시면서 흐뭇하게 즐기고 계시거나, 아니면 막상 창조해 놓고 보니, 처음 생각만큼 흡족하지가 않아서 열심히 고치고 돌보고 계시는게 아닐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아무 것도 안하고 쉬고 계시거나, 다 끝내고 물러나서 휴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보통 사람보다 영적 의식이 있다고 높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은, 쉽고도 유치한 생각을 가벼운 미소로 무시할 것이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절대적 창조 이념과 이상을 열심히 설명하면서, 첨단과학과 생명공학으로도 영원히 밝힐 수 없는, 놀랍고 경이로운 하느님 일이 있다고 확신할 수도 있다. 도전할 수 없는 존엄하고 영화로운 일이 따로 있다고 고백할 수도 있다.
하느님에 대해 아무리 고귀한 생각이나 신성한 의식을 가져도, 또 아무리 유치한 생각을 해도, 현실과는 별 상관도 없다 어떤 식으로 하느님의 위대성과 절대성을 경쟁적으로 증명한다고 해도, 실제로 우리가 달라지는 것도 없다. 한마디로 하느님이 백만장자건 천만장자건 어차피 초인간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면, 실질적으로 인간에게는 아무 차이는 없다.
사실 하느님은 모든 재산을, 달라는 대로 아낌없이 한정 없이 어제까지나 쉬지 않고 피부어주고 계신다. 1원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1원을 천원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천원을 세상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세상도 그냥 내주고 계신다. 그것도 무료로 아무 조건도 따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내주고 계신다. 그게 하느님이 지금 하고 계신 일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 무료 급식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눈만 돌리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인데도, 이 하느님의 사랑을 아예 거부한 채.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과 편견과 고집으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양식을 얻겠다며 헤매고 있다.
세상에는 생명의 빵을 바로 앞에 놓고도 굶어 죽는 배고픈 혼들로 가득하다; 자기 안에 살아 계신 바로 그 하느님을 찾아다니다가 죽어 가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신앙으로 즉시 잡아 챙길 수 있는 거리에 모든 것이 있는데도, 간절한 가슴과 피곤에 지친 발로 왕국의 보물을 갈구하며 다닌다. 신앙이 종교와 가지는 관계는 돛과 배의 관계와 같다; 그것은 힘의 증가이지, 결코 일생에서의 부담이 증가되는 것이 아니다. 왕국에 들어가는 자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투쟁이 있는데, 그것은 신앙에서의 선한 싸움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믿는 자에게 오직 한 가지 전투가 있으니, 그것은 의심─믿지 않음─을 이겨내는 것이다.[159:3.8]
당장 천원만 있으면 모든 행복이 찾아오는 걸인에게, 백만장자건 억만장자건 전혀 의미가 없다. 만약 인간이 하느님께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것은 가치로 따진다면 1원 어치도 안 될 것이다. 그런 1원 어치의 구걸이건만, 아무런 하느님의 응답이 없었다면, 그것은 백만장자 하느님을 못 만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한탄할 이유도 없고, 헤맬 이유도 없다. 1원을 얻으려고 재벌 하느님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며,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무한정으로 모든 재산을 퍼붓고 있는 분이, 바로 영원부터 영원까지 일하시고 계시는 하느님이다. 1원에 대한 굶주림만 있다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하느님이 계시는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아주 쉽다. 의심을 버리고, 편견을 버리고, 마음만 깨끗하면 된다.
영에서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은 행복이 있으니, 하늘의 왕국의 보물이 저희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의(義)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풍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온유한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청결한 자는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하느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애통하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슬피 우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저희가 기쁨의 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하늘의 왕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이다.
욕하고 핍박하며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는 악한 말을 듣는 자는 복이 있으니,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이다. [140:3.3]
하느님은 온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이시다. 절대자가 되시는 분이 심심하고 즐길 것이 없어서 우주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언지 모른다면,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바로 그 우주를 창조하신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복이 있다는 선언하신 진리는,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우주를 절대자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실감해야만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우쳐주고 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를 굳게 믿고 있다면, 현실과 부딪치면서 영에서 가난하고, 애통해하고, 의(義)에 굶주리고, 현실 때문에 슬피우는 것은 피하면 안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로인한 고통이나 좌절들은 물질적 보상이나 현세적 타협으로 사라지도록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진리에 대한 굶주림, 계시가 주는 지혜와 영적 통찰력으로 영원한 생명의 에너지로 전환시켜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내면에서 우리를 이끄는 하느님의 손길이다. 오직 흔들리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진리에 대한 갈망만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