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16-07-18
코너킥   417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모두 밎지만, 도대체 뭘 하고 계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보통 사람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영원 무한하신 분이니까 우주 만물을 끝없이 창조하고 계시거나, 아니면 일단 창조를 다 끝내고 창조된 우주를 보시면서 흐뭇하게 즐기고 계시거나, 아니면 막상 창조해 놓고 보니, 처음 생각만큼 흡족하지가 않아서 열심히 고치고 돌보고 계시는게 아닐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아무 것도 안하고 쉬고 계시거나, 다 끝내고 물러나서 휴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보통 사람보다 영적 의식이 있다고 높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은, 쉽고도 유치한 생각을 가벼운 미소로 무시할 것이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절대적 창조 이념과 이상을 열심히 설명하면서, 첨단과학과 생명공학으로도 영원히 밝힐 수 없는, 놀랍고 경이로운 하느님 일이 있다고 확신할 수도 있다. 도전할 수 없는 존엄하고 영화로운 일이 따로 있다고 고백할 수도 있다.

하느님에 대해 아무리 고귀한 생각이나 신성한 의식을 가져도, 또 아무리 유치한 생각을 해도, 현실과는 별 상관도 없다 어떤 식으로 하느님의 위대성과 절대성을 경쟁적으로 증명한다고 해도, 실제로 우리가 달라지는 것도 없다. 한마디로 하느님이 백만장자건 천만장자건 어차피 초인간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면, 실질적으로 인간에게는 아무 차이는 없다.

사실 하느님은 모든 재산을, 달라는 대로 아낌없이 한정 없이 어제까지나 쉬지 않고 피부어주고 계신다. 1원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1원을 천원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천원을 세상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세상도 그냥 내주고 계신다. 그것도 무료로 아무 조건도 따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내주고 계신다. 그게 하느님이 지금 하고 계신 일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 무료 급식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눈만 돌리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인데도, 이 하느님의 사랑을 아예 거부한 채.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과 편견과 고집으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양식을 얻겠다며 헤매고 있다.

세상에는 생명의 빵을 바로 앞에 놓고도 굶어 죽는 배고픈 혼들로 가득하다; 자기 안에 살아 계신 바로 그 하느님을 찾아다니다가 죽어 가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신앙으로 즉시 잡아 챙길 수 있는 거리에 모든 것이 있는데도, 간절한 가슴과 피곤에 지친 발로 왕국의 보물을 갈구하며 다닌다. 신앙이 종교와 가지는 관계는 돛과 배의 관계와 같다; 그것은 힘의 증가이지, 결코 일생에서의 부담이 증가되는 것이 아니다. 왕국에 들어가는 자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투쟁이 있는데, 그것은 신앙에서의 선한 싸움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믿는 자에게 오직 한 가지 전투가 있으니, 그것은 의심─믿지 않음─을 이겨내는 것이다.[159:3.8]

당장 천원만 있으면 모든 행복이 찾아오는 걸인에게, 백만장자건 억만장자건 전혀 의미가 없다. 만약 인간이 하느님께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것은 가치로 따진다면 1원 어치도 안 될 것이다. 그런 1원 어치의 구걸이건만, 아무런 하느님의 응답이 없었다면, 그것은 백만장자 하느님을 못 만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한탄할 이유도 없고, 헤맬 이유도 없다. 1원을 얻으려고 재벌 하느님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며,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무한정으로 모든 재산을 퍼붓고 있는 분이, 바로 영원부터 영원까지 일하시고 계시는 하느님이다. 1원에 대한 굶주림만 있다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하느님이 계시는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아주 쉽다. 의심을 버리고, 편견을 버리고, 마음만 깨끗하면 된다.

영에서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은 행복이 있으니, 하늘의 왕국의 보물이 저희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의(義)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풍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온유한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청결한 자는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하느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애통하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슬피 우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저희가 기쁨의 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하늘의 왕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이다.
욕하고 핍박하며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는 악한 말을 듣는 자는 복이 있으니,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이다. [140:3.3]

하느님은 온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이시다. 절대자가 되시는 분이 심심하고 즐길 것이 없어서 우주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언지 모른다면,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바로 그 우주를 창조하신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복이 있다는 선언하신 진리는,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우주를 절대자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실감해야만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우쳐주고 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를 굳게 믿고 있다면, 현실과 부딪치면서 영에서 가난하고, 애통해하고, 의(義)에 굶주리고, 현실 때문에 슬피우는 것은 피하면 안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로인한 고통이나 좌절들은 물질적 보상이나 현세적 타협으로 사라지도록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진리에 대한 굶주림, 계시가 주는 지혜와 영적 통찰력으로 영원한 생명의 에너지로 전환시켜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내면에서 우리를 이끄는 하느님의 손길이다. 오직 흔들리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진리에 대한 갈망만이 필요할 뿐이다.

 
네오 16-07-18
답변  
이런 분들은 어떨까요?

- 자신의 영적 판단이 가장 옳다고 흐믓해 하는 자
- 자신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모범이 된다고 확신하는 자
- 부족함이 없는 물질적 환경을 늘 감사하며 기뻐하는 자
- 늘 마음에 즐거운 일을 찾아 생각하고, 참여하는 자
- 의를 내세워 다른 사람의 부정을 핍박하는 자
- 악한 말을 하는 자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람들이 많은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반대되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많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토파즈 16-07-19
답변  
자기가 악한 말 한다고 믿는 사람이 없으니, 전부 자기를 의인이라 믿는 사람들인데, 예수님도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디오니스 16-07-18
답변  
인터넷에서 영성에 관련된 사이트를 여기저기 열심히 보았습니다만, 하나같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리가 이 시대를 밝히는 마지막 메시지라 믿고 있었습니다. 하두 답답해서 어떤 사이트는 직접 사람들을 만나 대화도 해 보았지만, 정말로 어디서부터 얘기를 풀어가야할 지 난감할 정도로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는걸 보았습니다. 진리를 찾으시는 분들이라서, 대화가 통 하리라 기대했었는데 아니더군요.

이제는 거의 포기한 상태입니다만, 아무래도 이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분들에게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이 독자가 할 일같습니다.

실제로 어느 영성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관리자를 직접 만났었는데, "생명의 빵을 두고 굶어죽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라고 아주 진지하게 걱정하고 슬퍼하고 있더군요. 웃을 수도 없고, 뭐라 말할 수도 없는 참으로 할 말이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분이 유란시아 책은 인연이 있는 사람만이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아무리 명백한 진리라도 마음이 편협하면 소용이 없더군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꼴라쥬 16-07-20
답변  
예수님은 진리를 찾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가르치신 것은, 하느님을 만나는 축복을 의미하는 것인데도, 그것으로 모든 행복을 받을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실제로는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하고 머물고만 있는 것입니다. 유란시아 책도 읽는 계기도 큰 축복을 받는 것이지만, 자기 것으로 취하려는 노력을 하질 않고, 저절로 쏟아지는 어떤 보물을 기대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하늘의 왕국의 보물이나 하느님을 보는 것이나, 실제로 노력을 해야 하는 데도, 공짜로 받는 것을 최고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버릇 때문에, 깨어나질 못하곤 합니다. 이런 것을 동물적 게으름이라고 지적하고 있고요. 이치적으로 조금만 생각해도 동물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데도 거부하는 사람이 있으니 선택의 문제 같습니다. 우리가 선택하면 하늘에서도 선택할 것이고, 우리가 거절하면 하늘에서도 방법이 없겠지요. 그게 예수님도 어쩌지 못했던 인간 자유의지의 신성한 힘이라고 봅니다.
최경곤 16-07-20
답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느님은 우리를 위하여 무언가를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있다면, 특별한 형식이 없다해도 기도와 경배는 자연스러운 형태로 이루어지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말씀처럼 우주를 창조하신 사실만 깊이 인정하면 웬지 경건한 마음이 생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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