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지기 쉬운 함정   16-07-20
사트바   431
 

삶의 지고한 목표는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기저기 널려있는 선의 조각들을 모아서 장엄한 본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선도 악도 아닌 것에서 선을 일궈내고 드러내고 찾아내고 닦아내어 광명이 나도록 하는 것이지요.

선의 반대가 악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악을 닦아내어 선을 이루겠다는 상식 이하의 오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한 성취가 가장 위대한 성공이라고 즐기면서 호언장담하곤 하지요. 모든 것이 상대적인 세계에서는, 악은 정말로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악은 아무리 닦아내고 치장해도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유란시아 책에서도 그림자는 실체가 될 수 없다는 이 말은 핵심이 되는 계시이기도 하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악을 만지작거리고 다루면서 뭔가를 개선하겠다고 빠져들곤 하는 데, 감추어진 선의 실체를 찾기 보다는, 주변에 널려있는 그림자를 보면서 같이 즐기기를 좋아하지요. 이런 것은 악을 좋아하는 본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그림자를 보면서 어딘 가에 참된 실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인간 본연의 심상 때문입니다. 이것은 진리에 반응하는 인간 본능이기도 하고요.

누구나 가진 이런 초기 본능에서 성장하지 못하면, 그림자 중에서도 덜 어두운 상대적인 것을 참이라고 여기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진하고 옅은 한 가지 색으로 모든 사물을 그려낼 수 있듯이, 그림자와 뒹굴면서 얼마든지 참된 것을 찾아내고 평가하고 성취감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화려한 빛을 발하지만, 일시적이며 더 밝은 그림자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생대적인 참이지요. 진리는 아닙니다. 참된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유란시아 책에서 시공간을 관통하는 참된 실체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본인의 그동안의 습성이나 심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스스로 크게 경각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자신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그러한 동기를 부여하고 그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계시는 엄청난 하늘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좀 가까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악은 선의 반대입니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악의 본질을 실체의 그림자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만, 선이 드러나야 마땅한 세상에서 왜 악이 드러나는 지, 자세하게 이유나 과정을 밝히지 않습니다. 동물적 기원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일이라서 설명할 이유가 없는 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성자들의 깨우침에는 왜 인간이 악과 더불어 어둠 속에서 상대적인 참을 즐기면서 평생을 보내는지 그 근본 바탕과 원인을 명백하게 밝힙니다. 쉽게 말하면 참된 실체를 본 적도, 그 방향도 도무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방향이 빛과 어둠의 드러나는 중간에서 있지 않고, 어둠 쪽으로 틀어져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한마디로 미망이라고 합니다.

미망 속에서 살아가면서, 악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를 등급별로 설명하는데, 그 기준이 되는 악덕을 탐진치, 곧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정하고 있지요. 악덕은 스스로 덕이라고 확신하지만, 사실은 그림자의 세상에서 악의 농도를 가지고 참됨을 겨루고 자랑하는 것이라서, 점점 새로운 악을 탄생시키고 확산하는 악의 씨앗인 셈이지요.

이것을 세 가지 삼독 중에서, 누구나 저지르는 것이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우주는 상승하는 에너지와 하강하는  에너지가 서로 역동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중심에 우주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은, 신성한 실체를 인정할 수 있는 능력과 그에 대한 신앙입니다. 

형용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엄청난 규모의 신성한 존재들이 하강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 책에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들 입니다. 그들의 하강 목적은, 상승하는 존재들과 함께 어울려 새롭게 펼쳐지는 장엄한 우주적 진리를 드려내려는 것이겠지요.

하강하는 초월적 존재를 무시하고 거부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우주 끝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주장한 악덕이 있었는데, 우리 우주에서 가장 사악하다는 그런 행위를 저지른 자가 바로, 우리와 직결된 루시퍼 입니다. 지금도 그를 따랐던 초인간들은 유란시아를 자유롭게 돌아다닙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의 주장에 동조되어 마음을 활짝 열고, 대리자로 일하는 사람도 여기저기 많습니다. 악덕을 덕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조금만 봐도, 곧 구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들이 주장하는 세상의 악덕에서,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는 만족감이나 인정받은 기쁨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리석음의 함정이지만, 당장 필요한 위로가 될 수는 있겠지요.

어리석음이 탐이나 진과 무관하진 않지만, 정신 차리겠다는 작은 결심만으로도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습니다. 치도 독이지만, 해독이 아주 쉬운 독입니다. 진리가 담긴 책만 읽어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독을 즐기는 분은, 해독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입니다. 원래 체질이 그럴 수도 있고, 이미 중독이 되어 헤어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벗어나야 합니다. 가장 쉬운 어리석음도 벗어나지 못한다면, 삶에서 끊임없이 악을 증식시킬 뿐만 아니라, 아무 소망도 가질 수 없습니다.

모든 독을 한꺼번에 해독시키는 진리가 가득 담긴 책이 유란시아 입니다. 책을 광고하는 이런 이야기가 소용이 있을지 의문입니다만, 답답한 심정에서 글을 올려 봅니다.

 
최경곤 16-07-20
답변  
탐진치에서 어리석음이 모든 원인이라는 말씀이 이해는 됩니다만, 평소에는 똑똑하고 영민한 사람이 유독 하느님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될 정도로 반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강한 탐욕이 아집을 단단하게 만들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집에서 나오는 자유 의지가 선천적인 영적 본능을 죽이는 것이지요.

책을 읽었음에도, 아무 의식 변화도 삶의 변화도 없고,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나 관심의 도구로서 유란시아 책을 화제로 삼는 분을 보면, 어리석음과 함께 어떤 탐욕이 있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이 한 두번은 잘못할 수 있겠지만, 가르침을 거부하면서 같은 일을 고의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면, 영적 반응에 문제가 많다는 증거겠지요.
네오 16-07-21
답변  
옳으신 지적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저자가 어떤 존재인지, 출신 배경이 의심스럽다고 얘기를 주고받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진실을 날조하는 이야기는 늘 있는 것이라서 반응할 이유도 없고, 하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습니다만, 그런 얘기에 깊은 흥미를 보이는 분이 있네요.
나그네 16-07-22
답변  
겉으로는 탐욕처럼 보이지만, 목적이 숭고하고 헌신적이면 실상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아무리 의미깊은 일이어도 자신을 뽐내려는 언행이 나타나면, 그러한 자만심이 모든 걸 파괴한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가롯유다 겠지요.

잠시 유다복음이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가룟유다가 예수님의 사랑과 신임 아래에 십자가 사건에 대한 특별 지령을 받았다는 내용이었지요. 예수님을 영리한 종교지도자 정도로 여기던 사람들이 기고만장하다가, 지금은 슬며시 사라졌지만, 이처럼 유다의 사악한 행위를 예수님을 위한 사랑의 희생이라고 주장할만한 사람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유다복음 덕분에 평소에 고상한 척 위장했던 사람들의 사악한 심성과 그들의 진면목이 폭로되어서, 관심이 없던 일반 시림들에게도 사람에 대한 경각심을 깨워준 효과는 있었지요.

이처럼, 평소에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듯 침묵하고 있다가, 기회가 있으면 악을 선으로 공공연히 주장하면서 교묘하게 진리를 파괴하는 분이 주변에 있습니다. 늘 조심해야겠지요. 사악한 영에 점령 당한 분들이라서 겉 모습으로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런 분들이 암묵적으로 악을 선으로 주장하며 세상에 악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 유란시아 독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내면에 악한 심성을 감추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계시의 확산을 가로막고 참된 영적 성장이 점점 자라나는 것을 극구 방해할 것입니다. 지혜롭게 살피며 경각심을 잃지 않아야겠지요.
계시가 어떤 계시인가요? 
하느님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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