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사랑할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랑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개인의 의지와 판단이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속 진리는, 예수님이 사심을 버리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직접 말씀하신 진리와 충돌합니다. 진리의 영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이 참된 진리라는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 세상의 욕심과 명예와 자만 때문에, 그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니 마음의 갈등은 피할 수 없고,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대속 교리에 매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현실적 탐욕이 을 변명하다보니, 다보니, 점점 더 예수님의 진리를 실천하기가 어렵게 되며, 이라는 진리와 멀어지고, 는 이고 바울의 해석들이 모두
인간 본성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포기와 변명으로 악을 정당화시키다 보니, 도덕심과 정의로움을 일으켜 세우려는 의지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비가 악을 허용하는 것으로 둔갑되고, 관용은 죄마저 감싸는 것으로 타락되어 있지요.
아무리 흉악한 범죄도 참회의 기도와 회심만 보이면, 예수님의 품 안에서 말끔하게 죄가 지워진다는 이상한 말까지 들립니다. 예수님은l 너무 위대해서 분별력이 사라졌다고 믿는 것이지요.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함을 나타내는 실체는 물론이고 방행조차 가늠할 능력이 사라져, 우왕좌왕 비틀거리며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포기와 변명이 해탈과 여유로움으로 해석되고, 아무 힘도 없었던 그림자인 악은, 인간의 상상 덕분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실체로 변신되어 거리를 활보하고 사람들의 의식을 드나들고 있다고 합니다.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자가 용사가 아니고, 악마를 찾아 마법을 파괴하고 악을 응징하는 자가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지요. 사심 없는 사랑이나 친절과 사랑과 헌신마저도, 개인의 명예를 드높이는 사치품으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자신을 정복하는 자가, 진정으로 우주적 용사라는 계시가 나온 배경입니다.
죄를 들추는 것을 정의라고 믿다보니, 어두움 속에서 빛을 찾아, 그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악을 파괴하는 것을 용기라고 믿다보니, 험난하고 가혹한 삶의 현실에서 순수한 사랑과 헌신을 실천하겠다는 마음이 일어나질 못합니다.
이러한 바탕에서, 예수님이 모든 것을 대신 짊어지고 있다는 무기력한 신앙과 가르침을 진리라고 여기는 것은 자연적인 인간 진화의 한 단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보여주신 사심 없는 사랑은, 그 자체가 우주 아버지의 뜻이며, 그것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고귀한 삶이라는 진리가 온 우주에 선포되었습니다. 온 우주가 이러한 새로운 복음에 기쁨의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진리가 선포된 유란시아에서는 그 새로운 복음에 전율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단지 3일 만에 부활한 기적의 쑈에 온통 정신을 잃을 정도로 기뻐하며 흥분했었지요.
우주에 선포되었던 새로운 복음은, 지금도 변함없이 온 우주에 특히 유란시아에서 진리의 길을 선택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늘 이웃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봉사와 헌신으로, 그 어떤 험난한 어둠과 장애가 가로막아도, 새로운 참됨과 아름다움과 선을 이루어내는 데 실패할 수 없는 그런 우주 아버지의 가족이 되라고 이끕니다.
새로운 계시는 온 우주가 격동했던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와 복음이 무엇이었는지 뚜렷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영원한 삶의 길은, 예수님의 심판이나 결정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닥친 혼란과 오염된 의식 세계가 유란시아 책의 등장 배경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는다고 그런 삶에서 갑자기 탈출하여 영원한 삶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악한 세상에서 벗어나, 빛의 세상에서 새롭게 혼의 열매를 만들어낼 기회가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어주신 진리의 영은, 살아계신 예수님의 사랑을 대신한다고 합니다.
진리의 영은 진리를 깨닫도록 이끄는 영입니다. 우리는 매일 진리를 깨닫는 방향으로 몸을 향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 행동이 없다면, 유란시아 계시의 모든 이야기들은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되다가 사라지게 되겠지요.
새 계시가 이 시대의 사람들과 많은 인연이 없다 해도, 책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들의 후손들에게는 엄청난 진리의 격랑으로 쏟아져 들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