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시대의 젊은이들은 지금 이 시대야말로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는 새로운 시대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적이 한번도 없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각 시대마다 한결같이 자신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믿었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시대에 종말이 온다고 믿지 않은 적도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역사적 시대와 종말의 시대는 매 시대마다 반복되었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역사의 흐름에서 본다면, 우리가 사는 지금 시대도 특별한 것은 아니다.
시대마다 위기가 닥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새로운 기회가 열리지 않은 적도 없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유란시아는 지난 2000년 동안 침묵하다가, 지금 이 시대를 택하여 시대적 계시를 주었던 것일까.
우리가 사는 시대는 진정으로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어떤 한계에 있었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인류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 퇴행을 겪어왔고, 지난 2000 년 동안 누적되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였을까? 아니면 하늘의 계획에 따라서 적당한 시기마다, 영적 활력을 새롭게 부어주는 스케줄에 따라서 주어진 것일까?
만약에 일정한 계획에 따라서 유란시아가 주어진 것이라면, 당장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방치할 수 없을 정도였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중에서 유란시아 책을 읽지 않아도 될 만큼 영적 성장이 순조로운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유란시아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그러한 책이 결코 아니다. 이 책이 계시라고 주장한다는 것 자체는, 책을 읽지 않고는 영적 퇴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현실적으로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우리는 나한테는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일종의 자신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영적 성장에서 자만심이 가장 치명적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