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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생각하면, 자아-억제는 뛰어난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거나, 스스로를 다스릴만한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간혹 자기 수양을 이루면 모든 것이 완성된다고 하면서, 유란시아 책의 진리마저 가볍게 보는 분도 있습니다.
글자로만 말한다면, 자아-억제는 유란시아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완성할 수 있습니다만, 그 참된 의미는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자아-억제가 자신을 의식하는 절제나 영적 해방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떤 의도적인 자기 관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가장 도적적이고 모범적인 자아-억제를 이룰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아-중심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이에 대한 정확한 진리를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소망하는 자기 완성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생각할 때는, 도덕적으로 뛰어났던 산헤드린 사람들의 얘기를 떠올리곤 합니다.
산헤드린 사람들은 인간으로서는 흠잡을 데 없이 경건하고 하느님을 섬기면서 이웃에게 봉사하는 올바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게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그 회원 중에 하나인 니고데모도 부자였지만, 경건한 삶을 살면서 이웃을 사랑하고 선행을 베풀면서 신성한 뜻을 늘 생각하며 자신을 억제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구하려는 적극적인 마음이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었지요. 제자들이 도망 갔을 때도,니고데모는 끝까지 현장에 남아서 손수 장례를 치른 사람입니다. 그러나 비록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높았지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을 깨닫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142:6.8]
니고데모는 매우 진지하였다. 그는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으나 어리둥절한 채로 떠났다. 니고데모는 자아-발전, 자아-억제, 그리고 높은 경지의 도덕적 본질특성까지도 성취하였다. 그는 세련되고, 자기본위적이고, 애타적이었지만, 그러나 작은 어린아이가 현명하고 사랑이 많으신 이 세상의 아버지의 안내와 인도에 기꺼이 복종하듯이, 신성한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뜻을 복종시키어,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로 하느님의 자녀 곧 영원한 왕국의 진보하는 상속자가 되는 방법을 알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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