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들어 유란시아 책을 다시 읽고 있는데,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읽어서 미처 이해 못했던 것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거나, 잊고 있던 내용이 되살아나는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다른 독자들도 그런 경험을 했다는 말을 보면, 문장마다 새 의미가 발견되는 것이 단지 나 자신의 기억은 아닐까 싶다. 책에서 말하는 진리의 영이 내가 새롭게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처음 읽고 많은 것을 깨달았지만, 그 중에서도 진리의 영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유란시아 책을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유란시아 책을 읽고 있고, 또 앞으로도 읽겠지만 이 책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은 틀림없다. 진리의 영이 어떻게 이 책을 읽도록 자극하고 동기를 주는지는 책을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진리의 영은 누구에게나 있다. 진리의 영은 하느님의 아들이 인류를 깨우기 위해서 육신의 필사자로 탄생하여 진리 계시의 생을 마치면, 그가 살았던 행성의 모든 인류에게 선물로 부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유란시아는 창조주 미가엘이 직접 육신으로 탄생하여 살았기 때문에, 진리의 영도 다른 행성에 비하여 특별하다는 암시가 곳곳에 있다. 특별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른다.
진리에 대한 이해가 다른 행성에 비하여 월등하게 높을 수 있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특별한 선물이니까 유란시아는 모든 인류가 특별히 하느님의 손길이나 배려를 공짜로 받고 있다는 의미인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후자는 아닐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 거의 다름없다는 경고가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공짜 티켓이라는 꿈은 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란시아의 모든 사람에게 퍼부어 준 진리의 영은, 우리가 다른 행성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진리도 이해하고 깨닫고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와 함께, 우리가 하느님의 진리와 마주하도록 모든 사람을 더욱 더 강력하게 자극하고 있을 것이다. 유란시아 책을 만난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은 진리의 영과도 연관될 것이다.
다만, 진리를 마주한다고 해서, 저절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진리를 발견하고 반응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뜻에 달려있다.
살아가면서 육체적 정신적 또는 영적 격동을 겪거나 어려움에 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만약 어려움을 모르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주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난관이 바로 우리가 진리와 만나고 받아들이도록 진리의 영이 강력하고도 맹렬하게 우리를 자극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한 자극에 따라서 새로운 도전이나 모험에 나선다면 흔들릴 수 없는 절대적 진리와 확신이 우리의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점점 더 스스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능력이 있다. 내게 이로운 것은 좋은 것이고 나의 생명을 방해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이런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력은 결코 사라질 수가 없다. 문제는 동물적 좋고 나쁨이, 반드시 참과 거짓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물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종의 생명체 진화 결과의 현상이라서, 당연히 좋고 나쁨을 가리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감기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더욱 왕성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원초적 에너지 현상이자 좋음에 대한 본능적 열망이지, 특별히 부어지는 진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부어주신 진리의 영을 그런 원초적 갈증을 해결하는데 써 보려는 유혹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스친다.
아마도 동물성을 지니고 있는한 쉽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진리에는 아무 반응도 못 보이고, 워든지 좋은 것만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무슨 그럴만한 피치 못할 사정이 나도 모르게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진리의 영을 거절하는 셈이다.
늘 그런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왔다갔다 하며 살아가지만, 책을 보는 동안에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미미하나마 조금씩 얻는 듯하다. 그것이 아마도, 같은 내용을 읽으면서, 새롭게 진리의 의미를 깨닫는 원동력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진리를 발견하려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한, 책을 읽도록 이끌고 모든 사람에게 부어진, 그 진리의 영이 활발하게 나를 자극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상상이거나 생각으로만 그칠 것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그래도 결심 만큼은 계속 새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