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란시아의 특별한 진리의 영   16-02-26
코너킥   534
 

금년 들어 유란시아 책을 다시 읽고 있는데,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읽어서 미처 이해 못했던 것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거나, 잊고 있던 내용이 되살아나는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다른 독자들도 그런 경험을 했다는 말을 보면, 문장마다 새 의미가 발견되는 것이 단지 나 자신의 기억은 아닐까 싶다. 책에서 말하는 진리의 영이 내가 새롭게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처음 읽고 많은 것을 깨달았지만, 그 중에서도 진리의 영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유란시아 책을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유란시아 책을 읽고 있고, 또 앞으로도 읽겠지만 이 책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은 틀림없다. 진리의 영이 어떻게 이 책을 읽도록 자극하고 동기를 주는지는 책을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진리의 영은 누구에게나 있다. 진리의 영은 하느님의 아들이 인류를 깨우기 위해서 육신의 필사자로 탄생하여 진리 계시의 생을 마치면, 그가 살았던 행성의 모든 인류에게 선물로 부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유란시아는 창조주 미가엘이 직접 육신으로 탄생하여 살았기 때문에, 진리의 영도 다른 행성에 비하여 특별하다는 암시가 곳곳에 있다. 특별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른다.

진리에 대한 이해가 다른 행성에 비하여 월등하게 높을 수 있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특별한 선물이니까 유란시아는 모든 인류가 특별히 하느님의 손길이나 배려를 공짜로 받고 있다는 의미인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후자는 아닐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 거의 다름없다는 경고가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공짜 티켓이라는 꿈은 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란시아의 모든 사람에게 퍼부어 준 진리의 영은, 우리가 다른 행성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진리도 이해하고 깨닫고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와 함께, 우리가 하느님의 진리와 마주하도록 모든 사람을 더욱 더 강력하게 자극하고 있을 것이다. 유란시아 책을 만난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은 진리의 영과도 연관될 것이다.

다만, 진리를 마주한다고 해서, 저절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진리를 발견하고 반응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뜻에 달려있다.

살아가면서 육체적 정신적 또는 영적 격동을 겪거나 어려움에 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만약 어려움을 모르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주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난관이 바로 우리가 진리와 만나고 받아들이도록 진리의 영이 강력하고도 맹렬하게 우리를 자극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한 자극에 따라서 새로운 도전이나 모험에 나선다면 흔들릴 수 없는 절대적 진리와 확신이 우리의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점점 더 스스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능력이 있다. 내게 이로운 것은 좋은 것이고 나의 생명을 방해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이런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력은 결코 사라질 수가 없다. 문제는 동물적 좋고 나쁨이, 반드시 참과 거짓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물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종의 생명체 진화 결과의 현상이라서, 당연히 좋고 나쁨을 가리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감기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더욱 왕성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원초적 에너지 현상이자 좋음에 대한 본능적 열망이지, 특별히 부어지는 진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부어주신 진리의 영을 그런 원초적 갈증을 해결하는데 써 보려는 유혹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스친다.

아마도 동물성을 지니고 있는한 쉽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진리에는 아무 반응도 못 보이고, 워든지 좋은 것만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무슨 그럴만한 피치 못할 사정이 나도 모르게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진리의 영을 거절하는 셈이다.

늘 그런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왔다갔다 하며 살아가지만, 책을 보는 동안에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미미하나마 조금씩 얻는 듯하다. 그것이 아마도, 같은 내용을 읽으면서, 새롭게 진리의 의미를 깨닫는 원동력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진리를 발견하려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한, 책을 읽도록 이끌고 모든 사람에게 부어진, 그 진리의 영이 활발하게 나를 자극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상상이거나 생각으로만 그칠 것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그래도 결심 만큼은 계속 새로워질 것이다.

 
최경곤 16-02-27
답변  
첨부터 읽으시는가 보네요. 저도 재작년 부터 생각나는대로 읽기보다는 연달아 읽고 있는데, 여러모로 훨씬 좋습니다. 워낙 큰 틀에서 계시되고 있기 때문인지, 제 능력으로는 머리 속에 제대로 담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만, 책을 읽을수록 뭔지 모르지만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전에 본적이 없던 새로운 것을 보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나게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랑으로 영그는 것이 바램이자 목표이지만 본능과 욕심과 세파에 흔들리다보니 아직 중심이 잘 서질 않고 있는 것이지요. 저도 결심만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구름가듯 16-02-27
답변  
결심이란 말을 들으니 여러가지로 공감이 됩니다. 가르침을 바로 실천하시는 분도 있고, 깨달음으로 끝내는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깨달음과는 달리 실천이 잘 안되어서 애쓰는 분이 많으리라 봅니다. 예수님이 늘 말씀하신 가르침을 봐도 실천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수 있고요.

실천은 저마다 다르니, 비결이 있을 수 없습니다만, 의지나 마음 작용으로 머무르는 각오나 결심을 좀더 사실적인 의식으로 키우려면 기도와 경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서, 조용한 시간에 내용을 떠 올리며 기도나 명상으로 마무리해 보면 훨씬 좋습니다. 실천은 아니지만, 한발 가까이 가는 것 같습니다.
티거 16-03-01
답변  
저도 나름 게으르지만 꾸준히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있지만... 과연 이부분을 읽고 넘어간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항상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깜짝 놀라곤 합니다...

저또한 유란시아를 접하게 된 동기를 되새겨 볼때 결국은 진리의 영의 인도를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특히나 모태신앙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이비 종교적인 주장들, 자극적인 미스테리 우주나 외계인, 지구상의 거대한 음모론 등등을 다루는 책이나 사이트들을 전전하며 어설픈 흥미를 느끼곤 했습니다. 유란시아를 직접 읽게된 동기 조차도 여러 싸이트들이 유란시아란 책을 언급하고 있기에 이건 또 뭔가 싶어 들춰보다가 초반에 어렵고 이해안가는 부분들은 대충 건너뛰고 우주에 관한 부분만 읽으면서... 정말 대단한 SF소설을 읽는 느낌이었었습니다..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어려운? 부분은 건너뛰고 읽다보니.. 아담과 이브의 얘기에서는 정말 엄청난 소설적 감동을 느끼면서 정말이지 이 책의 저자는 정말 천재라고 여겼던 생각이 납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이 모든것은 결국 하느님의 자녀인 필사자로 하여금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가를 파헤쳐 보게끔 유도하는 진리의 영의 인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처음에는 진리의 영을 제 수준?으로 인격화 하여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우연을 빙자하여 진리의 영이 유란시아서를 제 앞에 떨어트려 주는 유치한 상상을 했었지만...  진리의 영은 일종의 보조 일곱영과 같은 전 유란시아를 감싸는 회로로서 필사자의 마음회로에서 존재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를 자극하게 되고.. 그러한 자극은 각기 다른 경험과 우여곡절을 격더라도 결국 모두를 진정한 진리 -즉 유란시아서에서 말하는 진리- 를 발견하게끔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그러한 진리 추구의 자극 혹은 기능은 결국 미천한 필사자 형태에서 하느님과 같은 완전성 달성이라는 긴 여정에서 끊임없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도록 자극하는... 다시말해 어설픈 진리의 첫 개념을 접한 후 체험으로서 조금더 완벽해지는 하루하루의 과정을 끊임없이 자극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이러한 진리 발견, 추구라는 기능이 7 보조영 중 경배의 영과 조금 겹치는 개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납득, 직관, 지혜, 경배 등등의 용어에서 중복이 되는 의미가 있지만 분명히 구분이 되어진다면, 물론 회로를 발생시키는 주체도 다르지만... 일곱 보조영과는 차별되는... 상위 수준 내지는 다음단계의 회로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책에서 얘기하는 영 회로의 개념이 한정된 우리의 개념과 용어수준에서 벌어지는... 어떤 어려움이 클테죠...


코너킥님께서 말씀하신 유란시아의 진리의 영이 조금 특별하다는 말씀은... 아무래도 우리가 처한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진리를 발견하고 받아들이기가 다른 행성보다 척박한 현실을 보상하기 위한 어떤 좀 더 강력한 처방이 가해진 회로가 아닐 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유란시아서의 여러 부분에서 죄와 반역으로 인해 고립된 상황을 언급하고 있고... 그러한 특별한 상황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일반적인 행성과는 다른 방법으로 좀더 진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어떠한 특수한 기능이 더해진 진리의 영이 가동되고 있다는 의미 아닐까요?
 
4:3.3 (58-1) 유란시아 필사자들이 하느님 납득에 있어서 갖고 있는 어려움의 대부분, 거의 대부분은, 루시퍼 반란과 칼리가스티아 배신의 멀리-미치는 영향들에 기인한다. 죄에 의해 격리되지 않은 세계들의 경우에는, 진화 종족들이 우주 아버지에 대한 훨씬 더 나은 관념들을 조성할 수 있으며; 그들은 혼돈과 왜곡 그리고 개념의 곡해를 덜 겪는다.
생명체 태동 
성령의 일곱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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