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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을 설법하신 선승들께서 남기신 말씀 중에는, 강을 건너면 배를 버리고 목적지에 이르면 지팡이를 버리고 고기를 잡았다면 잠시 그물을 잊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자로나 문맥에서나 병아리가 태어나면 껍질은 소용없다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미가 확산되는 방향이나 크기는 유란시아 책에 견줄만한 것이 없지요.
불경에서는 세상살이를 생사의 고해라고 보기 때문에, 피안에 이르는 방편으로 불법과 깨달음이 쓰인다고 하지요. 피안에 이른 사람이 없으니 그곳에 새로운 험산 준곡이나 천인단애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찌되었건 배를 끌고 갈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유란시아 책에서도 속세의 삶은 바람에 날리는 티끌이지만, 그 티끌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진리는 인간의 성취와 권위를 증명하는 도구는 아닙니다. 깨달았다는 오만으로, 버리고 불태우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고, 진리로 착각하고 살고있는 쓰레기들이지요. 그러한 소각될 가짜 진리를 끊임없이 불태우고 버리면, 아무 성취도 결실도 없게 되는 것이겠지요. 끊임없이 배를 버리면서 바다를 건너는 사람은, 그래서 바다를 건너지 못합니다. 진리는 고해를 건너고, 피안을 넘어서도 여전히 진리가 되는 것이지요.
책이나 진리나 교회나 성당이 껍질이 아닙니다. 껍질은 그 안에 의존하면서 아무 성장도, 아무 힘도, 키우지 않고 있는, 나약한 마음을 말합니다.
방향을 알 수없는 망망대해에서, 우리 모두는 배를 믿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그물을 탓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는 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힘이 생겼다면, 더 이상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도구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도구를 가지고 온실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유란시아 진리 입니다.
껍질은 매일 매일의 삶입니다. 병아리인지는 스스로 판단할 문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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