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유란시아서 의 가르침 은 한마디   16-04-30
새벽아침   555
 

나에게 유란시아서 의 가르침 은 한마디 로 충격 그자체 엿고 살면서 그 가르침 은 사실로 다가옵 에 나는
경악스럽기 조차 합니다


오늘날 인류 에게 가장 시급한문제 는 바로 자아절제 라는 문제게지요


이는 우리들에게는 바로 개인성 생존의문제 이며 더나가 끝도없이 앞의로 전개될 낙원섬 에 대한 끝없는 지향이라는데 반드씨 필요하게지요 그려나 이 자아억제 라는 막중한 임무 에 소홀하여


우리가 예수님 을 믿고 따른다 함 은 주님 의 이 자아억제 의 모범 을 따른다 하는것 이게지요 그려나 그간 제가 카톨릭 과 기독교 에서 경협한바 로는 우리가 군 이라는곳 에서부터 무리 로 다시 개인 이라는곳 까지 진화된 인간 이라면그 개인에 대한 상호존중 은 말해 무엇하게 씀니까 저에게


4부 예수의가르침


은 자아 을 억제하면서 한걸움 한걸움 파라다이스 낙원섬 에 계시는 나에 아버지 깨 이르게 끔 하는 지침서 입니다

 
구름가듯 16-05-01
답변  
많은 분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분들 까지도 유란시아의 4부를 읽고 감동을 빋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전하고 있던 진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새로운 진리가 들어있지요. 성경에서 침된 예수님의 진리를 깨닫는 이주 놀라운 분들도 간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분도 4부를 읽으면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됩니다.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4부 이야기는 계시가 무엇인지 더욱 실감되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최경곤 16-05-03
답변  
단순하게 생각하면, 자아-억제는 뛰어난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거나, 스스로를 다스릴만한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간혹 자기 수양을 이루면 모든 것이 완성된다고 하면서, 유란시아 책의 진리마저 가볍게 보는 분도 있습니다.

글자로만 말한다면, 자아-억제는 유란시아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완성할 수 있습니다만, 그 참된 의미는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자아-억제가 자신을 의식하는 절제나 영적 해방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떤 의도적인 자기 관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가장 도적적이고 모범적인 자아-억제를 이룰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아-중심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이에 대한 정확한 진리를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소망하는 자기 완성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생각할 때는, 도덕적으로 뛰어났던 산헤드린  사람들의 얘기를 떠올리곤 합니다.

산헤드린 사람들은 인간으로서는 흠잡을 데 없이 경건하고 하느님을 섬기면서 이웃에게 봉사하는 올바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게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그 회원 중에 하나인 니고데모도 부자였지만, 경건한 삶을 살면서 이웃을 사랑하고 선행을 베풀면서 신성한 뜻을 늘 생각하며 자신을 억제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구하려는 적극적인 마음이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었지요. 제자들이 도망 갔을 때도,니고데모는 끝까지 현장에 남아서 손수 장례를 치른 사람입니다. 그러나 비록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높았지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을 깨닫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142:6.8]
니고데모는 매우 진지하였다. 그는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으나 어리둥절한 채로 떠났다. 니고데모는 자아-발전, 자아-억제, 그리고 높은 경지의 도덕적 본질특성까지도 성취하였다. 그는 세련되고, 자기본위적이고, 애타적이었지만, 그러나 작은 어린아이가 현명하고 사랑이 많으신 이 세상의 아버지의 안내와 인도에 기꺼이 복종하듯이, 신성한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뜻을 복종시키어,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로 하느님의 자녀 곧 영원한 왕국의 진보하는 상속자가 되는 방법을 알지는 못하였다.
네오 16-05-03
답변  
진리를 실천하고 완성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때라 개인마다 성취하는 길들이 모두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자아 억제라는 진리가 결정적인 자기 완성의 길이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을 것이고, 그 밖에 다른 진리가 동기가 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한결같이 하느님을 달성하는 길이겠지요.

이 책에서 얻는 충격의 동기는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해도, 충격 그 자체는 아마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경험하는 공통적인 요소겠지요. 개인적으로 그러한 충격이 영적으로 새롭게 자극을 받고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순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위대한 스승들과 현자들은 어떤 위대한 깨달음의 순간이 따로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나같이 평범한 인간에게는, 책을 읽고 느끼는 작은 충격도 그러한 위대한 깨달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책에 매료되는 것이지요.
새벽아침 16-05-03
답변  
최경곤 님 의 답글 을 읽고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자아-억제는 뛰어난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거나, 스스로를 다스릴만한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간혹 자기 수양을 이루면 모든 것이 완성된다고 하면서, 유란시아 책의 진리마저 가볍게 보는 분도 있습니?

라는 최경곤님  의 답글을 읽고서  저는 마음찹찹합 을 금할길 이 없어씀니다  제자신 은 소위 수행.구도.수도자 라는 형색속에  나을 속이고  나의 그릇된 삷의자세  을 합리화 하려하던 삷을 살다가  우연한 기회 에 나을 바라볼수 잇는 기회 을
얻어  수행.구도.수도자  이전에 나에게 돌아와서  보니  실로 기가막힌 제모습 이더군요 

스스로  수행자 수도자 이니 또는 믿는다는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들은 자신들에  종교신앙 의로  도적적이고 모범적인 자아-억제를 이룰 수도 잇고  수행자 라는 옷에 파붙혀서 감히 인류형제 의 형색을 비웃고 멸씨하고 무시하면서 자신을 인류형제 들 위 에 들수는 잇게지요  그려나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자아-중심이라는 함정 인가 말입니다

제가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  자아비판 이라는 엄숙한 행위 을 하면서  이 불행한 자아중심 이라는데에서 조금자유로워지
면서  한없이  형제들 앞에 겸허하게됨  을 느끼면서    예수의 가르침  의  은행을 뼈속깊히 느끼지요

최경곤 님 의 소중한 답글 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사트바 16-05-08
답변  
진솔하신 말씀에 공감이 가네요. 저 또한 비슷한 처지에 있었기에 새벽아침님의 글이 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유란시아를 만나는 사람들 
왜 시대적 계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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