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엄한 우주 법칙-mechanism   12-01-11
불새   642
 

인류는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어 왔다. 모든 신화가 그러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고, 선조들이 그렇게 믿으면서 세상을 떠났다. 모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어떤 영원한 세상에서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거나 혹은 믿으려 애쓰고 있다.

유한 세계를 초월하는 하늘 세계가 신화가 아닌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을 예전 사람들은 무작정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첨단 시대에서는 무작정 믿는 것이 쉽지않다. 비록 인간이 거역할 수 없고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질서와 법칙이 존재하고 있음을 받아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과학적으로 검증되거나 이성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한, 초자연적 세계는 단지 그럴듯한 반신반의로 여긴다.

유란시아 책은 최첨단 시대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초자연적 법칙과 질서가 왜 있으며 그 본질이 무엇인지 밝히면서, 무한하고 영원한 세계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도록 이끌어 준다.

유란시아는 시대적 계시이다. 단지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고 재미와 흥미를 돋우려고 계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라고 불리지 않으면 도저히 해석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계시라 말하는 것이다.

계시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하늘의 법칙이 있다고 믿는다. 우주 행성의 완벽한 균형과 역동성,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자연의 법칙, 진화생명체의 속성과 반응, 역사로 입증된 선과 악의 대립, 누구나 아는 사랑과 미움의 귀결들은 사람의 능력으로 바꾸거나 부인될 수 없는 질서들이다.  이러한 하늘의 도리와 법칙들이, 도덕경에서 말하듯 인간이 손길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유래되어 되어, 저절로 원래부터 있었다고 말해왔다. 혹은 원시종교처럼 인간을 다스리는 하느님의 법칙이니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유란시아의 설명은 사뭇 다르다.  모든 하늘의 도리와 법칙들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사실을 밝히면서, 그것이 왜 모두 하느님의 손길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분명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무작정 받아들이고 복종하고 따르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철저하게 깨우쳐주고 있다. 유란시아에서 밝히는 냉엄한 하늘의 도리와 법칙들은 인간이 따라야 할 일방적 설명이 아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면 안 되는 필연적인 이유와 그 배경을 설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두가 인정하듯이, 인간이 참견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하게 실재하는 어떤 우주와 자연의 도리가 있다. 우주질서는 사정없이 작동하고 냉엄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그리고 저절로 늘 어김없이 동일한 기능을 발휘하는 총체적인 장치를 통 틀어서 메커니즘mechanism이라 말한다. 모든 것이 사랑 가득한 하느님의 손길이지만, 인간이 체험하는 것은 어떤 냉엄하고 변함없는 하늘의 법칙과 도리, 단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인식될 수 있을 뿐이다.

유란시아 책에 얼마나 엄청난 내용이 담겨있는지를 실감하는 것은, 얼마나 자주 읽는 가에 비례한다. 처음 읽는 문장에서 깊은 감동을 받고 놀라는 것은 누구나 체험한다. 그 문장을 다시 자세하게 읽으면 단순한 감동을 넘어 전율을 느끼면서 순간적으로 멍한 상태가 되곤 한다. 이런 체험을 한 독자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같은 문장을 반복하여 읽다가, 앞뒤에 있은 글과 연결하여 이해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으로 경배와 기도를 위해 잠시 숨을 멈추곤 한다. 아마도 이런 독자는 유란시아 책이 왜 계시가 아니면 안 되는지, 그 당위성을 스스로 찾아가는 중일 것이다.

하늘의 법칙, 천계가 냉엄한 메커니즘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배경에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이 자리 잡고 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유란시아 독자가 아니고는 없으리라 단정한다. 메커니즘은 단순한 장치나 구조가 아니다. 자연현상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동적으로 결과가 이루어지는 하늘의 법칙도 그렇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총체적 기능에는 심오한 배경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메커니즘mechanism은 한글로 표현되는 외래어이다. 한글 사전에서 말하듯이 일반적으로는 '사물의 작용 원리나 구조 또는 기교와 수법'을 나타내지만, 전문적으로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수단이나 기능을 가진 어떤 구조적 과정이나 틀"을 뜻한다.

유란시아 책에서 메커니즘이 종종 사용되는 데, 이곳 번역은 '기능구조', 다른 번역에서는 '기계장치'로 쓰여 있다. 기능구조로 번역하건 기계장치로 번역하건, 앞 뒤 문장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 말이 한글 사전에서 전문적으로 설명하는 뜻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러나 다른 문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같은 단어와 같이 연결해서 그 개념을 이해하면, 배경에 깔린 우주 법칙으로서의 메커니즘이라는 원대한 의미가 드러난다.

에너지, 마음. 영적 현상을 물론이고, 신이 존재하는 양상까지도 저절로 어김없이 필연적이고 확정적일 수밖에 없음을 표현할 때, 메커니즘 (기능구조 혹은 기계장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책은, 자연법칙처럼 예전에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했던 모든 우주적 법칙과 진리들이 아무도 몰랐던 상위 차원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인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전혀 새로운 개념이 지금 비로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제시되고 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계시이다. 

그러나 유란시아 계시는 책을 읽으나 안 읽으나, 누구나 즉시 확인할 수 있고 만인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 그러한 계시는 아니다. 유란시아 계시는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만 드러나는 계시이다. 알아차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게으른 사람을 재촉하는 그러한 계시이다.

스스로 알려고 애쓰는 사람과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사람이 결코 같은 결실을 맺을 수가 없다는 것이  우주 마음과 영적 세계의 냉엄한 메커니즘이다, 하늘의 법칙이며 질서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임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계시의 참 모습이다.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1-25 독자 게시판에서 복사 된 것입니다. ]
 
코너킥 12-01-12
 
반란이 일어나자마자 영적 회로가 즉시 차단되었다는 삭막한 얘기가 있는데, 그런게 메커니즘이겠지요. 루시퍼와 사탄만 없었더라면, 유란시아는 20 만년 동안 행성 진화가 잘 진행되어 지금은 이상 세계를 만들었을겁니다. 차단이 메카니즘이면 회복도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지겠지요. 그게 언제가 될지..ㅇㅇ
꼴라쥬 12-01-14
 
상처받은 동물처럼 아주 작은 아픔과 고통에도 몸부림을 치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하느님을 찾고 구세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진리의 메시지를 듣고 머리 속에 담아도 동물적 이기심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지요. 우주가 그런 사람까지 구원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참된 사람과 자비와 공의의 메커니즘이겠지요. 그런 우주 질서가 상상할 수 없는 깊고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이기심을 가진 사람이 깨달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 사탄과 루시퍼입니다.
디오니스 12-01-18
 
불새님이 올리신 글을 읽으면서 우주법칙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메커니즘에 대한 용어를 다시 정했으면 좋겠네요.

정확하게 정해진 대로 작동하는 것이《메커니즘》입니다. 《기계장치》라고 번역하면 물건 같아서 아쉬운 점이 있지만, 기계와 절대적으로 관련이 있는 단어이므로 《기계》라는 냉막한 느낌을 주는 말이 꼭 들어가야 합니다. 《기능구조》라는 번역은 아마 한글 사전의 설명에 나오는 기능과 수단을 생각해서 그렇게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다른 문장에서 말하는 기계(메커닉)라는 말과 관련성을 찾을 수가 없어서 제대로 해석이 안될 수 있습니다.

《기능구조》와 《기계장치》라는 번역이 모두 타당한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어간이 되는 기계라는 말과 실제적 의미인 과정과 수단을 지칭하는 말을 모두 나타낼 수 있도록 《기계기능체》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우주의 모든 움직임이 실제적으로는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담겨 있지만, 필사자의 능력으로는 우주가 오직 냉혹하고 무자비하게 보이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인지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능구조'를 검색해 보면, 37편의 글에서 이 말이 등장하고 있는데, 각 문장의 배경에는 하느님의 신성한 숨결이 마치 위대하고 무시무시한 법칙으로 오해될 수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 고대 종교에서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라는 절대적 요구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이유도 잘 설명되지요.

검색 결과를 일부 인용해 봅니다.

제 2 편
...조화우주의 비실체인 그러한 태도들은 정의로운 판결의 우주 법정들이 공의(公義) -결정의 명령을 보류하는 과도기 자비-관용과 그리고 공정성을-찾아내는 《기능구조》들 때문에 오직 우주 안에서 생존할 수 있다. 2:3.6 지역우주 들에서의 창조주 아들의 통치는 창조하고 영성화이다....

제 7 편
...진정한 영 가치들 그리고 진실한 영성화된 개인들은 영원 아들의 영 중력의 확실한 장악 안에 붙들려 있다. 예를 들면, 필사자 마음은 물질적 《기능구조》로서 그의 생애를 시작하고, 결국 에는 거의 완전한 영 존재로서 최종의 무리단에 편입되는데...

제 9 편
...낙원천국은 무한성의 물질적 지레받침이며; 셋째근원이며 중심의 매개자들은 물리적 창조의 《기능구조》안으로 물질적 차원의 동기를 주고 자발적 행위를 주입시키는 지능의 지렛대들이다. 4. 절대 마음 9:4.1 그의 물리적 그리고 영적 속성들로부터...

제 11 편
...교차적 조절로서 무언가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중간-지대가 주(主)우주의 연속적인 공간 차원들을 분리하는 중간 공간 또는 고요한 지대들의 조정 《기능구조》라고 믿는 자들이 많지만, 어떤 증거 또는 계시도 이것을 확인한 바 없다. 이 추론은 이 중간-지역이, 주(主)우주의 비충만-공간 《기능구조》의 기능...

제 16 편
...위로자 또는 진리의 영이라고 불리는, 증여 아들들의 영의 그 이후의 증여. 16:4.15 7. 지역우주들과 초우주 의 반영성 《기능구조》. 색다른 이 현상과 관련된 많은 특성들은 공동행위자 그리고 최극존재와 관련된 주(主) 영들의 활동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합리적으로....

제 33 편
.. 결코 앉지 않으며, 그것은 높은 훈련과 실제적인 창조체 체험을 가진 창조체들의 독점적인 기능이다. 33:7.2 네바돈 의 전체 사법 《기능구조》는 가브리엘의 감독 아래에 있다. 구원자별에 위치한 고등법원들은 체계 법원들로부터 올라오는 항소사건들과 일반적인 우주 유입 문제들로...

제 101 편
..있는 동안 영적인 만족을 실현하는 것에 대한 참된 체험을 의미한다. 101:1.2 생각조절자는 그것을 통하여 자아-표현을 성취하는 특별한 《기능구조》를 갖고 있지 않으며; 종교적인 감정들을 받거나 표현하기 위한 신비적인 종교적 능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 118 편
...유기체 진화는 생명운반자들의 기원적인 물리적-생명 이식들의 잠재에 의해 물리적으로 제한된다. 118:8.2 필사자 사람은 기계, 살아 있는 《기능구조》이다; 그의 뿌리는 정말로 에너지의 물리적 세계에 있다. 인간의 여러 반응들은 본질적으로 기계적이다; 삶의 대부분은 기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제 127 편
...자신의 큰 뜻을 맞추어가는 기법을 꾸준히 연마하고 있었다. 그는 영적 충동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물질적인 성취에 대한 방향을 바꾸는 《기능구조》를 거의 완벽하게 터득하였다. 그는 이 세상에서의 실재를 영위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하늘의 일생 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서서히 배워 갔다....

제 195 편
... 마음이 물질로부터 “창발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에 우주가 단지 《기능구조》이고 마음이 물질과 구별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관찰된 어떤 현상에 대해서 다른 두개의 해석들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

신학과 철학은 많이 다릅니다. 하느님의 뜻과 생각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해석하고 답을 찾아가는 철학자들은 우주질서나 자연이 냉혹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과거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우주의 질서가 기계처럼 움직이는 어떤 법칙이라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철학에서 말하는 메커니즘, 곧 《기계론》으로 번역되고 있지요.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기계론》에 맞서서,  신학자들은 하느님의 《목적론》으로 반박하고 그런 와중에서 다시 《전체 예정론》이 등장하여 《기계론》과 《목적론》을 조화시켜 보려고 애쓰면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혼란에 빠졌던 것이지요. 인간이 해석할 수 있는 자연의 인과법칙(因果法則)이 과연 어떤 근거와 배경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놓고, 여러 논란과 학설이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대 철학의 시작이 되었던 기계론은 지금도 유물론의 바탕입니다. 특히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는 "모든 생명체는 태엽을 감은 기계장치와 같다"는 유명한 학설로 《동물기계론》을 주창하였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말이 메커니즘인데, 이런 철학적 배경을 잘 아시는 분이 그래서 《기계장치》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아주 유명한 데카르트의 이 말은 유란시아 책에서 그러한 기능이 아니라고 전적으로 부인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 글 [4:1.6]
우주는 태엽이 감긴 만큼 작동하다가 기능을 멈추는 그러한 시계처럼 감겨진 것이 아니다; 모든 것들은 계속해서 새롭게 되고 있다. 아버지는 에너지와 빛과 생명을 끊임없이 쏟아 부으신다. 하느님의 일은 영적일 뿐 아니라 글자 그대로 이다. “그는 북쪽을 빈 공간 너머로 힘껏 뻗게 하시고 땅을 무(無)에 매다신다.”

아무튼 인간의 한계로서는 《기계기능체》로서 해석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철학자들에게는 우주 질서나 자연의 인과법칙을  정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칸트도 자연계는 기계론, 초자연계는 목적론이 있다는 식으로 타협했듯이,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주장된 생기론, 기계론 환원주의를 지나 최근에는 유기체로 보는 전체론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하느님의 숨결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방황하게 만들 뿐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배경을 깊이 이해하고 감싸면서, 새로운 진리를 계시하는 책이 유란시아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하여 지금까지 내려오는 신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복종심의 노예 상태에서 《기계기능체》로서의 무시무시한 우주 현상들이, 유란시아 책을 통하여 한없이 크고 깊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질 수 있는 무한하고 영원한 기능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량 12-01-20
 
휴머니즘, 메커니즘처럼 꼬리말로 쓰이는  -니즘(-ism)에는 복합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원사전을 찾아보니 이런 꼬리말이 붙으면, 어떤 움직임이나 활동, 특정한 형편이나 상태, 조건이나 현황, 원칙이나 교리를 복합적으로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이런 복합적인 의미를 뭉뚱그려보면, 무언가에 심취하여 폭 절어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럴 때에 그 단어의 끝에 -이즘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휴머니즘(humanism)이 인본주의, 인간성, 인간학을 나타내는 복합적인 말로 두루 쓰이는 데, 인간이라는 주제에 폭 빠져있다는 의미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즘(buddhism)도 불교, 불법, 불교 교리를 총칭할 수 있는 복합적인 의미로 사용하는데 마찬가지로 buddha 에 몰입되어 있음을 뜻하기 때문 같습니다. 느낌이 그렇습니다.

spiritual 에 붙는 접미사 -al은 -적(的)이라고 번역하면 거의 완벽하게 영어의 개념을 그대로 한글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는 쉬운 꼬리말도 있습니다. 한글 실력이 워낙 짧은 형편이라서, -니즘(-ism)에 담긴 복합적인 뜻을 모두 그대로 표현하는 적당한 한글이 뭐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기계기능체>라는 말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대안은 없지만요.

영어를 잘 아시는 분도 영어의 복합적인 개념이 그대로 전달되는 한글을 찾는 것이 늘 어려운 문제라고 합니다. 모른다고 해서 복합 개념을 그때그때 용도에 맞게 일일이 쪼개서 표현한다면, 원래 지니고 있던 복합적 의미로서의 단어는 사라지는 것이겠지요. 결국 어휘력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면 누구나 2만개 정도의 자국어를 일상 용어로 이해한다고 합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10만개의 어휘력을 정확하게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인이 실제로 대화나 글에 사용하는 어휘력은 이해하는 단어의 10분의 1이 채 안된다고 합니다. 우리말에 아주 능숙한 외국인이 이해하는 한글 어휘력이 대략 1,500~2,000개 정도가 된다고 하고, 저처럼 평소에 책을 안 읽는 사람이 순간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어휘력은 평균 600~900개가 고작이라고 합니다.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아주 초라하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최소 2만 개는 되기 때문에 유란시아 책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불새님과 코너킥, 꼴라쥬, 디오니스님의 고견을 읽으면서 듣는 한글은 그나마 쉬운데, 말하는 한글은 참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점진적 창발과 창조 
신의 본질특성- 신성(神性) - (Deity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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