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란시아에서 읽은 글 중에서 인간이 겪는 가장 큰 갈등은 동물에서 탄생되고 물질 육체를 가지고 동물 속성에 지배당하는 현상과 영적 진리의 빛이 내면에 존재하여 영적 속성에 이끌리고 반응하는 현상으로 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두가지 힘이 인간의 마음을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반대되는 이러한 힘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성인도 죽음의 관문을 넘어서기 전에는, 동물적 속성이라는 아래 방향과 영적 성장이라는 윗 방향으로 이끄는 두 가지 힘의 한 가운데에 존재하며 양쪽 방향에서 서로 잡아당기는 도전과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지요.
나이에 상관없이, 깨달음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자기가 서있는 위치에서 아래쪽을 바라보라고 요구하는 동물적 속성과 윗 쪽을 바라보라는 진리의 영의 이끌림에 끊임없이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동물적 본능은 우리에게 자신을 드높이고 승리를 쟁취하여 명예와 영광으로 군림하라고 유혹하며 남을 비난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끌고 내려갑니다. 그러나 진리의 영은 자신의 탐욕과 만족을 위하여 남을 해치지 말고 오로지 더욱 가치 있는 일을 찾으라고 우리를 윗 쪽 방향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유란시아에 사는 인간의 운명은 다른 행성에 비하여 더욱 비참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루시퍼가 주창한 우주 악으로 인하여 우주의 영적 회로가 고립된 행성이며 그러한 우주 악이 널리 만연되었던 여파가 여전히 강력한 곳이라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이러한 악과 선의 구별이 다른 행성에 비하여 쉽지가 않다는 점입니다. 우주에 있는 열개의 행성 중에서 하나는 반드시 십진법 소수 행성으로서 어떤 실험적인 도전을 맞아하곤 하는데, 유란시아가 바로 그러한 실험 행성중의 하나입니다.
십진법 소수 행성은 소수점이 존재하는 행성입니다. 선과 악이 1대1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1.2나 1.99처럼 선이나 악으로 정확히 구분되지 않고 소수점으로 표시될 수밖에 없는 애매한 상황이 늘 벌어지는 행성이라는 의미지요. 아마도 다른 행성이었다면 모든 옳고 그름이 더욱 확실하고 더욱 빠르게 결정되어 반박이나 격돌의 여지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소수점이 존재하는 유란시아는 옳고 그름도 분명하지가 않고 상황에 따라 옳은 것으로 선택될 수도 있고 잘못된 것으로 내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십진법 소수 행성에게 닥쳐오는 더욱 힘든 도전이자 운명이겠지요. 그러나 이 운명에서 생존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승리보다 값질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동물적 속성에 시달립니다. 스티브잡스의 연설장면을 들으면서 그의 탁월한 시각과 진리의 정신이 무엇인지 더욱 실감이 가는군요. 그의 연설 중에서 마지막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간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다르게 된 번역을 원래의 맛이 나도록 고쳤습니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죽어서까지 가고 싶어 하진 않죠.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은 삶을 바꾸어주는 행위자 입니다. 죽음은 오래된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길을 만들어 줍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바로 새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서 여러분도 점점 오래된 것이 되어가면서 사라져 갈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타인의 생각의 결과물에 불과한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타인의 견해가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세요.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의 가슴과 영감은 여러분이 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이죠.
스티브는 죽음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며 그에 반하는 삶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타인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그들의 견해에 무심코 따라하는 그런 삶을 살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종종 불리는 안철수는 타인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무관심을 꼬집으며 타인의 견해에 수긍하고 그들의 판단에 동참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한사람은 창의의 정신으로 헝그리를 외치는데, 한국에서는 앵그리 버드를 아이콘으로 삼아 비난과 파괴가 개혁의 첫걸음인양 말하고 있습니다. 스티브가 자신의 막강한 힘을 이용하여, 세상을 더욱 혁신시키려고 정치에 나섰을까요.
한국 사람들은 왜 모두가 동물적 본성에 굴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의 자세라고 믿고 그처럼 열심히 따라하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는 이미 동물적 본성과 진리의 힘의 중간에서 멀어져버린 것은 아닐까요. 이미 동물의 세계에 깊숙하게 들어와 버린 것은 아닐까요. 왜 1과 2의 뚜렷한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1.25와 1.31의 소수점에 목숨걸고 경쟁하고 있을까요. 한국 사회가 이미 어둠에 잠겨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자신을 돋보이려고 아니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남의 성취를 인정하기 거부하며 자신의 세계만을 만들어가려는 것은 자주성과 독립성이 강한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사수하려는 동물적 본능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진리의 영이 이끄는 방향이며 어떤 것을 추구해야만 할까요.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성취와 비교하여 더욱 돋보이려는 그러한 상대적인 우월성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들입니다. 그것은 창의력이 아니라 경쟁력입니다. 그러한 경쟁은 동물의 삶입니다.
경쟁될 수 없는, 비교될 수 없는 절대적인 우월성, 그러한 가치를 찾아서 스티브의 말처럼 타인의 견해나 시선에 관계없이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삶을 바칠 수 있으면 됩니다. 그것이 진리의 영이 이끄는 삶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며 진장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스티브의 말처럼,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 사람까지도 그것이 무엇인지 이미 내면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고재를 돌리고 쳐다보려고 하지 않을 따름이지요.
인간 승리는 미국에서는 이루어지는데, 한국에서는 안되는 것일까요.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5-22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된 것입니다. ]
내용중 책 본문의 decimal 에 대한 의견이 있어서 이곳으로 복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