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란시아 書와 佛經(16)   11-07-30
E.T   988
 

삶과 죽음 (4)


모론시아 접수 행성들에서 새롭게 개체화되는 존재들에 대해서 112편에서 기술하고 있는 특성들 요약해보면;
1) 오랜 휴지(休止)기간에서 깨어나는 ‘혼’에게 非-영적 실재들과 접촉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모론시아 에너지 패턴이 부여되고, 2) 이 새로운 에너지 패턴에 모론시아 式으로 변형된 우주 마음이 회로화 되며, 3) 육신의 소멸로 분리되었던 ‘생각 조절자’가 돌아오고, 4) 또한 분리되었던 ‘영-본성’이 다시 재결합되며, 5) 이렇게 개체화된 모론시아 존재에 前生의 기억, 통찰력, 그리고 의식이 더해져서 인간 자아의 부활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새로운 개체화의 진상은 깨어나는 인간의 자아가 새롭게 분리된 우주 마음이 회로화 된 모론시아 위상의 획득에 있다. ‘영-본성’의 現象은 우주 환경에 대한 자아-반응의 정체성의 지속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마음의 중재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자아(Selfhood)는 자아(Self)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계속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된다.; 물리적 삶에서 그 변화는 점진적이며; 죽음과 새로운 존재로의 개체화에서는 그 변화는 급진적이다. 모든 자아(영-본성)의 진정한 실제는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끊임없는 변화에 의해서 우주 상황들에 반응하여 작용할 수 있다.; 停滯는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끝이 난다. 인간의 생명은 변하지 않는 ‘영-본성’의 안전성과 결합된 생명 요소들의 끝없는 변화이다.”


모론시아 존재로서의 새로운 개체화의 관건은 육신의 죽음으로 소멸된 물질적 마음 대신에 새로운 우주마음의 획득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영-본성의 現象은 우주 환경에 대한 자아-반응의 정체성의 지속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마음의 중재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現象’이란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사물의 모양과 상태’, ‘본질이나 객체의 외면에 나타나는 象.’을 말합니다.


위의 본문에서 말하는
‘영-본성의 現象’이란 인간이 물질적 마음으로 인식하는 ‘영-본성’, 모론시아의 존재가 우주마음으로 인식하는 ‘영-본성’, 그리고 영적 존재가 영적마음으로 인식하는 ‘영-본성’이 각 개체들의 다양한 자아의 정체성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한편 ‘자아-반응의 정체성의 지속’이란 계속되는 진화의 각각 다른 차원들에서 자아의 정체성은 단절되지 않고 연속적으로 이어져야하며, “그리고 이것은 오직 마음의 중재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기술처럼 새롭게 탄생한 모론시아 개체에 육신의 죽음으로 분리되었던 ‘영-본성’이 재결합되어 자아의 정체성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우주마음의 획득이 필수라는 거지요. 이렇게 획득된 우주마음에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前生에서의 기억, 통찰력, 그리고 의식이 더해져서 인간으로서의 자아의 정체성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前生에서의 기억, 통찰력, 그리고 의식’이란 어떤 것들일까요? 사람의 물질적 마음은 선천적인 물질적 본능에 기초하여 사물을 판단하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내재하는 ‘생각 조절자’와의 개별적인 교통과 명상수련으로 사람의 물질적 사고(思考)는 점차 靈的으로 고양되고 진화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물질적 마음에 기초한 前生에서의 의식은, 앞의 글에서 인용한 112편의 “생명의 정지는 마음의 증여를 위한 물리적 뇌의 패턴들을 파괴하며, 마음의 붕괴는 인간의 의식을 종결시킨다.”라는 설명처럼, 육신의 죽음으로 소멸되는 물질적 마음과 같이 종식되고, 모론시아 개체의 우주마음에 더해지는 것은 개개인이 이룩한 영적진보로 물질적 마음을 초월하여 靈的으로 고양된 前生에서의 기억, 통찰력, 그리고 의식이 모론시아 개체로 이어지며, 이렇게 새롭게 태어나는 모론시아 개체는 전생에서의 영적진화를 이어받아 새로운 우주환경에서 영적진보를 계속한다는 것이지요.


본문에서
“자아(Selfhood)는 자아(Self)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계속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된다.; 물리적 삶에서 그 변화는 점진적이며; 죽음과 새로운 존재로의 개체화에서는 그 변화는 급진적이다.”라고 합니다. 위의 문장에서 앞부분의 ‘자아(Selfhood)’는 계속적으로 진화하는 물질적, 모론시아적, 영적인 모든 개체들의 자아를 포괄적으로 말하는 것인 반면에, 뒤 부분의 ‘자아(self)’는 각 개체들의 개별적인 자아로 표현된 ‘영-본성’의 현상적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진화의 여러 단계들에서 각 개체들이 ‘자아’를 인식하는 마음이 물질적, 우주적, 그리고 다시 영적으로 진화하면서 그들이 처한 환경요인들도 또한 급격히 변화하지만, 포괄적 의미에서의 자아는 이런 계속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진화단계들에서 단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유기체인 인간의 몸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유년기, 청년기, 노년기로 변해가며, 우주 실재를 인식하는 물질적 마음도 인식의 지평이 개개인의 수행과 노력에 따라 점진적으로 진보하고 확장되지만, 죽음은 이런 물질적 몸과 마음의 소멸이라는 급진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모론시아 존재로서의 개체화도 새로운 형태의 모론시아 에너지 체제와 우주마음의 증여라는 급진적 변화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어서
“모든 자아(영-본성)의 진정한 실제는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끊임없는 변화에 의해서 우주 상황들에 반응하여 작용할 수 있다.; 停滯는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끝이 난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자아(영-본성)의 진정한 실제, The true reality of all selfhood (personality)”는 진화하는 모든 개체들의 궁극적 자아로서 잠재적 神性인 ‘영-본성’을 뜻합니다. 진화하는 개체들은 진화의 단계에 따라 몸의 구조가 바뀌고 그에 따라 마음도 물질적, 우주적, 영적으로 변함으로 진화의 단계별로 변화된 우주 상황들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런 변화의 고리가 단절된 정체(停滯)는 단지 개체들의 ‘몸’이 소멸되는 것만이 아니라 자아의 소멸이라는 궁극적인 죽음이라는 거지요. 유기체 부분들의 합(合)이 ‘나’라는 물질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육신의 죽음을 자아의 소멸로 생각하지만, 육신의 죽음과 소멸은 진화의 자연적 현상일 뿐이며, ‘영-본성’에 대한 자의식의 정체(停滯)가 진정한 죽음이라는 것이지요.


 “
인간의 생명은 변하지 않는 ‘영-본성’의 안전성과 결합된 생명 요소들의 끝없는 변화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의 ‘인간의 생명’이란 사람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하는 유기체의 대사작용(代謝作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아의 생존’이라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재하는 ‘영-본성’의 발현인 인간 자아의 정체성은 ‘영-본성’의 완전한 현현(顯現)을 향한 진화과정에서 생명의 매체가 인간, 모론시아 존재, 영적 존재로 계속 바뀌어감에 따라 자아의 정체성도 진화하며, 이렇게 변화되는 자아의 정체성은 절대 단계에서는 완전한 神性으로 발현되어 모든 개체들의 현상적 자아의 정체성들을 통합하고 포용하기에 인간의 자아도 살아남는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앞의 6장에서 물질적 마음은 과거 지향적인 반면에 영적 마음은 미래 지향적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일련의 단계들을 거쳐 진화하는 자아의 정체성을 물질적 마음의 관점에서는 ‘인간 자아의 생존’이라고 한다면, 영적 마음의 관점에서는 물질적 몸과 마음의 작용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궁극적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神性으로의 회귀’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를 것 같습니다.


佛家에서는 모든 現象이나 事物은 佛性의 표현이며, 모든 것은 佛性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萬法一如, 萬法歸一’이라고 합니다. 진화하는 개체들이 물질적, 모론시아적, 또는 영적차원들에서 인식하는 개별적 자아는 ‘영-본성’이 다양한 우주 상황들과의 반응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궁극적 실제는 잠재적 神性인 ‘영-본성’이며, 영적진화의 모든 단계들은 완전한 ‘영-본성’의 현현을 지향하기에, 앞의 3장에서 살펴본 ‘
영-본성은 神格의 숙명에 이를 것’이라는 기술처럼, 모든 진화의 과정을 ‘神性으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12편에서
“관찰자가 관찰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평가는 평가되는 대상을 어느 정도 초월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합니다. 죽음을 초월한 ‘인간 자아의 생존’의 의미는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초월한 ‘모론시아’ 차원에 도달해서야 평가할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풀쐐기 계제(階梯)에서 나비가 나오듯이, 그들이 한때 물질적 육신 속에 가려졌던 것에서 벗어나 최초로 드러나는 인간 존재의 참된 ‘영-본성’들이 맨션세계들에서 나타날 것이다. 지역우주에서 모론시아 생애는 ‘혼’ 존재의 초기 모론시아 차원으로부터 점진적 靈性의 최종 모론시아 차원에까지 ‘영-본성’ 기제(機制)의 계속적인 향상에 있다.”


나비가 알에서, 유충, 번데기를 거쳐 화려한 나비로 우화하듯이, 인간의 육신이란 껍질에 가려져있던 ‘영-본성’이 맨션세계들에서 처음으로 껍질을 벗고 나타난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증여된 ‘영-본성’은 나비의 ‘알’에 비유되는 육신이라는 껍질로 그 본성이 가려져 있었으며, 죽음으로 육신의 껍질이 벗겨져 최초로 ‘영-본성’이 나타나지만, 이렇게 드러나는 ‘영-본성’은 기능상의 특성으로 다시 ‘유충’에 비유되는 모론시아의 ‘몸’이라는 다른 껍질을 받아 ‘영-본성’의 현상적 정체성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맨션세계들에서 모론시아의 초기 단계로부터 최종단계에 이르기까지 ‘영-본성’이 내재하는 기제(機制)들은 계속적인 진화과정을 거치지만, 맨션세계들에서의 이런 진화가 바로 화려한 나비로의 변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유충이 성장하여 다시 번데기로의 탈바꿈 과정과 같이 다음 차원인 영적신분으로의 상승을 위한 준비단계라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피렌체대성당의 지도자들로부터 다비드상의 조각을 의뢰받았습니다. 당시 대성당의 작업장에는 오래전에 다른 조각가가 예언자 상을 제작하려고 준비했으나 결이 좋지 않아 조각하기 어려운 거대한 대리석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대리석을 이용하여 3년 만에 완벽한 ‘다비드상’을 완성하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조각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며 어떻게 결도 좋지 않은 대리석으로 이렇게 완벽한 조각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미켈란젤로는 “내가 ‘다비드상’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다비드상’은 원래 대리석 속에 있었고 나는 단지 ‘다비드상’을 덮고 있었던 껍질들을 벗겨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112편에서: “지역우주 생애를 위한 너희의 모론시아 ‘영-본성’의 형상들에 대하여 너희들에게 가르치기는 힘들다. 너희는 ‘영-본성’을 나타낼 수 있는 모론시아 패턴들을 증여받을 것이며, 이것들은 결론적으로 너희의 이해를 초월하는 외각(外殼)이다. 그러한 형상들은 전적으로 사실인 반면에, 너희가 지금 이해하는 물질적 상태의 에너지 패턴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 형상들은 너희의 물질적 육체들이 인간 탄생의 행성에서 행한 것처럼 지역우주 세계들에서 동일한 목적에 봉사한다.”


인간의 죽음을 넘어서 살아남은 ‘혼’들이 맨션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모론시아 형상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이 물질적 육신과 마음으로 神으로부터 증여받은 ‘영-본성’을 인식하고 나타낼 수 있었던 것처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형상의 모론시아 에너지 패턴으로서 맨션세계들에서 ‘영-본성’을 인식하고 나타낼 수 있다는 거지요. 이렇게 맨션세계에서 부여받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에너지 체계의 형상도 단지 인간의 육신에서 벗어난 ‘영-본성’의 보다 성숙된 발현을 위한 매체라는 겁니다.


“어느 정도까지, 물질적 육체-형상의 외관은 ‘영-본성’ 정체성의 특성에 감응한다.; 물리적인 육체는, 어느 정도, ‘영-본성’의 선천적인 자질의 어떤 것을 반영한다. 모론시아 형상은 더욱 더 그러하다. 육체적인 삶에서, 인간들은 내적으로는 추할지라도 외적으로는 아름다울 수도 있다.; 모론시아 삶에서, 그리고 더욱더 모론시아의 높은 차원들에서, ‘영-본성’의 형상은 내적 인격의 자질에 따라서 직접적으로 변할 것이다. 영적인 차원에서 외적 형상과 내적 본성은 완벽한 동일화에 근접하기 시작하고, 점점 더 높은 영적 차원들에는 점점 더 완전해진다.”


위의 본문에서 “
물리적인 육체는, 어느 정도, ‘영-본성’의 선천적인 자질의 어떤 것을 반영한다. 모론시아 형상은 더욱 더 그러하다.”라고 합니다.


佛家에서는
來生의 몸을 받는 것은 現生에서 지은 業에 따라 결정되고, 現生에서 받은 몸은 前生에서 지은 業의 결과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우주에서 장구한 진화과정의 출발점으로 보는 ‘유란시아 책’의 설명은 동물적 기원으로부터 진화된 인간이라는 유기체에 ‘보조-영’으로서의 물질적 마음이 증여되고, 이렇게 마음이나 靈을 가지고 있는 유기체에 神으로부터 ‘영-본성’이 증여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물리적인 육체는 ‘영-본성’의 증여 이전에 형성되는 유기체인데, 위에서 말하는 “‘영-본성’의 선천적인 자질”을 어떻게 인간의 육체에 반영한다는 것일까요?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神으로부터 특별한 여러 가지 자질들을 부여받으며, 이렇게 부여받은 여러 영적자질들 중의 하나가 ‘영-본성’으로 인간의 참-자아로 표현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말에 ‘나이가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이 있다’는 격언이 있지요. 앞의 2장에서 살펴본 ‘영-본성’의 속성들 중에
“진화하는 물질적 생명체들에게 증여될 때, 그것은 마음의 중재를 통하여 靈이 에너지-물질을 지배하도록 노력하게 한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영-본성’은 삼위일체 각각으로부터 사람에게 증여된 ‘생각 조절자’, ‘진리의 영’ 그리고 ‘성령(聖靈)’이라는 3重의 靈들로 하여금 에너지-물질인 사람의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도록 하며, 이런 靈들의 작용이 사람의 ‘몸’에, 우리가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현상을 위의 본문에서“물리적인 육체는, 어느 정도, ‘영-본성’의 선천적인 자질의 어떤 것을 반영한다.”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또한 사람의 성장과정에서 ‘영-본성’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라는 후천적인 경험도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며 이에 따라 사람의 ‘몸’도 상응하는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이 아닐까요?


본문에서
“인간들은 내적으로는 추할지라도 외적으로는 아름다울 수도 있다.”라고 합니다. 인간들은 왜 내적으로 추하다고 했을까요? 서문에서 ‘영-본성’의 궁극적 실제인 神性은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함’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마치 나비의 꿈이 ‘알’속에 숨겨져 있듯이 육신이라는 껍질로 내주하는 ‘영-본성’의 속성이 가려져 있기에, 마치 두꺼운 알의 표면에 갖가지 진한 화장으로 아름답게 보일 수는 있어도,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함’의 원천으로 잠재적 神性인 ‘영-본성’은 아직 그 속성들이 무지의 어둠속에 가려져 나타나지 못하였기에 내적으로는 추하다는 것이 아닐까요? 절집에 ‘구설선(口說善) 심불선(心不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선(善)을 말하자만 마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모론시아 삶에서, 그리고 더욱더 모론시아의 높은 차원들에서, ‘영-본성’의 형상은 내적 인격(Person)의 자질에 따라서 직접적으로 변할 것이다.”
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본성’의 형상이란 초기 모론시아 존재의 자아로 환생하는 ‘혼’을 통하여 지속되는 前生에서 자아의 정체성이 반영된 모론시아 ‘몸’을 의미하며, 이런 모론시아 ‘몸’의 형상은 내적 인격(Person)의 자질, 즉 내적으로 인식된 ‘영-본성’의 정체성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또한 모론시아의 높은 단계들로 진화함에 따라 ‘영-본성’의 정체성도 계속 확장되며, 이렇게 확장되는 ‘영-본성’의 정체성 따라 570번 변천하는 모론시아 개체들의 ‘몸’의 형상도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영적인 차원에서 외적 형상과 내적 본성은 완벽한 동일화에 근접하기 시작하고, 점점 더 높은 영적 차원들에는 점점 더 완전해진다.”라고 합니다. 앞의 3장에서 “유란시아의 인간들에게 증여된 ‘영-본성’의 전형은 자아-표현 또는 인격(Person)-실현에 일곱 차원들의 잠재성이 있다. 이들 차원의 현상들은 유한 차원에서 셋으로, Absonite 차원에서 셋으로, 그리고 절대 차원에서 하나로 실현될 수 있다. 亞-절대 차원들에서는 이 일곱 번째 또는 총체적 차원이 ‘영-본성’의 사실로 체험될 수 있다. 이 최고의 차원은 절대를 연상할 수 있으며, 비록 무한하지는 않지만, 차원적으로 무한에 가깝게 절대를 통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라는 기술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론시아 세계들의 물질적 차원을 넘어선 영적 차원에서는 ‘영-본성’의 정체성이 점차적으로 무한에 가까워진다는 것이지요. 영적차원들의 존재들은 ‘모론시아’차원의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형상은 벗어났지만, 인간이 알 수 없는 어떤 靈的형상을 가진다고 합니다. 영적존재들의 진화가 계속됨에 따라 이런 영적형상도 무한에 가깝게 확장되는 ‘영-본성’의 발현과 동일화에 근접하며, 궁극의 절대단계에서는 ‘영-본성’이 神性으로 현현(顯現)되어 외적형상과 내적본성이라는 구분이 없는 완전한 일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0-14 독자 게시판에서 복사 된 것입니다. ]
 
나그네 11-07-30
 
영-본성은 말 그대로 영적 차원에서 드러나는 본성입니다. 따라서 물질차원에서 영적 차원의 본성을 (잠재 혹은 실제로서) 다루거나 현현 시킨다는 개념은 성립될 수 없는  언어적 유희입니다. 영적 차원에서 드러나는 영적 본성도 개념적으로는 영적 본성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영-본성의 주체가 무엇이라는 것인지 아무 갈피가 없으니, 허공속에서 헤메는 느낌입니다. 그런 해석이라면, 유란시아 책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겠지요.

본성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에서 볼때는 본성의 주체가 되는 영적 실체, 각자가 저마다 다르다는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를 나타내는 말로 영-본성을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일방적인 해설이 되겠지요.  무엇보다도, (영적) 실체가 (영적) 본성의 하위개념이 되는 불교만이 가지는 비논리적 궤변으로 변질될 것입니다.

"서문에서 ‘영-본성’의 궁극적 실제인 神性"이라고 이해하셨다면, 모든 존재가 저마다 다르다고 말하는 영-본성마저 종국에는 신성으로 용해되어 사라지게 되겠지요. 앞뒤가 안 맞는 해석입니다. 부분적으로는 잘 설명된 글이 전체적인 오류 때문에 노작이 빛이 바래지는 모습이라 아쉽네요. 잘 읽었습니다.
운해 11-08-03
 
좋은 말씀 같은데 유란시아 책보다 더 어렵네요. 암튼 열공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란시아 書와 佛經(17) 
유란시아 書와 佛經(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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