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6)
“생존하는 가치의 혼은 자아 정체성의 종전의 자리인 물질적 지능의 양적, 질적 행동과 동기들 모두를 성실하게 반영한다.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선(善)을 선택함에 있어서, 필사자 마음은 지혜의 靈의 감독 아래 연합된 일곱 개의 보조 마음-영들의 지도로 前-모론시아 우주 생애를 시작한다. 그 후, 일곱 주기들의 前-모론시아 과정의 성취를 달성하면, 보조 마음에 첨가하여 모론시아 마음의 증여로 지역우주 진보의 前-영적 또는 모론시아 생애를 시작한다.”
위의 본문에서 말하는 ‘생존하는 가치의 혼(The soul of survival value)’이란, 앞의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前生에서 영적으로 인식된 우주의 가치와 신성한 의미들을 씨줄로 하여 짜여진 ‘혼’으로, 이렇게 “생존하는 가치의 혼은 자아 정체성의 종전의 자리인 물질적 지능의 양적, 질적 행동과 동기들 모두를 성실하게 반영한다.”라고 합니다.
앞의 2장에서 살펴본 111편에서 기술하고 있는 생각 조절자와 인간의 물질적 본능 사이의 상충과 갈등, 그리고 개개인의 영적 수준의 차이로 내재하는 ‘영-본성’에 대한 차등적 인식으로 개별적 ‘혼’들에서 나타나는 영적 가치와 의미의 패턴들이 다양할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前生에서 인간지능의 다양한 행동과 동기 모두가 반영된 ‘혼’들의 환생인 모론시아 개체들이 지역우주에서 시작하는 개별적인 삶도 이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진다는 것 같습니다. 흔히들 인생을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합니다. 꿈속에서 거닐던 몽유도원(夢遊桃園)도 꿈을 깨고 보면 나른한 봄날에 한조각의 꿈이듯이 우리네 인생도 한조각의 허망한 꿈이라고들 하지요. 그러나 위의 본문은 사람으로서의 삶은 허망한 꿈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에서 인지한 우주의 가치와 의미들이 ‘혼’의 영적 패턴과 상승, 그리고 새롭게 환생하는 모론시아 존재로서의 삶의 양상에 결정적인 동인(動因)이 된다는 것이지요.
인간차원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이루는 내재된 ‘영-본성’의 발현은 초보단계이지만, 이렇게 발현된 ‘영-본성’은 잠재적 神性이며, 우주에서의 진화는 내재하는 ‘영-본성’의 완전한 현현으로 神性에 대한 깨달음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서문에서 “神性은 피조물들에게 眞, 美, 善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위의 본문에서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선(善)을 선택함”이란 모론시아 세계에서 환생한 개체가 지향해야 하는 완전한 ‘영-본성’의 발현, 즉 神性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진화의 방향과 목표를 다른 말로 풀이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환생의 방에서 모론시아의 형상을 부여받고 탄생한 개체들이 아직은 맨션세계로 상승하지 못하고, “필사자 마음은 지혜의 靈의 감독 아래 연합된 일곱 개의 보조 마음-靈들의 지도로 前-모론시아의 우주 생애를 시작한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앞의 5장에서 인용한 62편에서 동물로부터 인간으로의 진화과정과 일곱 개의 보조-마음 靈들과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초기의 원시동물 단계에서는 ‘직감의 靈’이 부여되고, 동물의 진화가 계속됨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해의 靈’, ‘용기의 靈’, ‘인식의 靈’, 그리고 영장류가 나타남으로 ‘분별의 靈’이 작동하고, 겨우 백만 년 전에 나타난 안돈과 폰타에 ‘경배의 靈’과 ‘지혜의 靈’이 증여됨으로 인간이 출현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혼’들이 ‘모론시아’의 접수행성들에서 새로운 ‘모론시아’ 존재로 환생한 개체들은 ‘모론시아’의 우주마음을 증여받기위한 준비단계로 ‘지혜의 靈’의 감독아래 일곱 개 보조 마음-靈들의 지도로 前-모론시아의 우주 생애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원시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는 장구한 시간에 걸쳐 일곱 개의 보조마음-靈을 ‘직감의 靈’부터 ‘지혜의 靈’까지 순차적으로 부여받았으나, 모론시아 접수행성에서 환생한 개체들은 연합된 일곱 개의 보조 마음-靈들을 부여받고, 그들의 단계적인 지도로 모론시아 존재로서의 새로운 삶을 위한 모론시아 前-단계의 우주 생애를 거쳐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준비과정이 얼마나 방대한지? 그리고 얼마나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지 알 수 없지만 또 다른 예비 우주생애라고 하니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한편, 이렇게 환생한 개체들이 모론시아의 前-단계로서의 예비 우주생애는 왜 ‘지혜의 靈’의 감독아래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책에서는 지혜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을 하고 있지만, 132편에서 지혜는 관계들을 다룬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는 횡적으로는 ‘나’와 ‘너’라는 개인적인 관계, ‘나’와 주변 환경들과의 복합적인 관계들도 있고, 종적으로는 인간과 모론시아 존재와의 관계,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神과의 관계 등 진화과정에서 단계별 계층들과의 포괄적인 관계를 의미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안돈과 폰타’에게 ‘경배의 靈’과 ‘지혜의 靈’이 증여되어 인간이라는 특별한 種이 출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안돈과 폰타’에게 마지막에 ‘지혜의 靈’이 증여됨으로 우주의 유기체적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여 영장류의 단계를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따라서 새롭게 환생한 개체는 모론시아 前-단계인 예비 우주생애를 통하여 지구라는 행성에서 분리되고 고립되었던 우주의 어린아이 신분을 벗어나 우주실재와 직접 연결되는 새로운 관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혜의 靈’의 감독아래 모론시아 존재로서의 삶에 필요한 준비사항들을 학습하고 숙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모론시아 접수 행성들의 환생의 방’에서 다시 깨어나는 오랜 세대에 걸친 다양한 삶들의 배경을 가진 수많은 ‘혼’들이 혼란을 피하고 모론시아 존재로서 새로운 우주생애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준비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前-모론시아 우주 생애’에서의 준비 과정에 들어간 개체들은 “일곱 주기들의 前-모론시아 과정을 성취하면, 보조 마음에 첨가하여 모론시아 마음의 증여로 지역우주 진보의 前-영적 또는 모론시아 생애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앞에서는 주로 영적이나 우주적으로 진보하지 못한 사람들의 ‘혼’이 모론시아 존재로 환생하는 과정을 살펴본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또한 “영적으로 그리고 우주적으로 진보된 필사자들이 죽으면, 그들은 즉시 맨션세계들로 나아간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된 복잡한 중간과정들을 뛰어넘어 바로 맨션세계들로 직행한다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이 영적으로 그리고 우주적으로 진보한 사람들일까요?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영적으로 그리고 우주적으로 진보할 수 있을까요? 책의 전편에 산재해있는 영적진보에 대한 설명들과 그 연결고리들을 찾아 종합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훌륭한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한편, 책에서 말하는 神性에 대한 깨달음과 절집에서 말하는 佛性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매우 비슷한 경로를 거치는 것 같습니다. 앞의 3장에서 소개한 佛家의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라는 3계를 책에서 설명하는 유란시아 차원, 지역우주의 모론시아 차원, 초우주의 영적차원과 대비시켜보면 흥미로운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유란시아 차원: 사람에게 神들로부터 다양한 靈들과 ‘영-본성’이 증여되었으나, 동물적 본성의 물질적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
욕계(欲界): 육신의 감각을 통한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로 사대왕천(四大王天)에 서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이르는 6개의 세계.
2) 지역우주의 모론시아 차원: 동물적 본성의 물질적 육신에서 벗어나 우주실재와 직접 연결되는 우주마음을 증여 받았으나, 아직은 물질적 형상에 머물러 있는 세계.
색계(色界): 감각적 욕망에서는 벗어났으나 물질적 형상의 틀에 묶여있는 세계로 범중천(梵衆天)에서 대자재천(大自在天)에 이르는 18개의 하늘세계.
3) 초우주의 영적차원: 지역우주의 물질적 형상에서 벗어나서 주-영(主-靈)의 영적 마음을 증여받았으나 아직은 세 가지 차원의 경계들이 남아있는 영적존재들의 세계.
무색계(無色界): 물질적 형상에서는 벗어났으나 아직은 무명(無明)의 번뇌들이 남아있는 정신세계로 공무변처(空無邊處)에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 4 개의 하늘세계
삶과 죽음의 문제는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고대 이집트에도 ‘사자(死者)의 書’가 있었고, 티베트 불교의 ‘사자(死者)의 書’도 동일한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깊고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사자(死者)의 書’라는 이 책들의 주제는 죽음 그 자체를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하여 우주의 여러 현상들을 관통하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함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발견할 수 있도록 삶에 대한 사람의 제한적인 시야를 확장해주기 위한 것이지요. 어떤 역사학자는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으며 과거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논리를 좀 더 확장해보면 미래의 눈을 통해서만 현재를 조망할 수 있으며 현재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모론시아 세계에 대한 설명이나 일련의 ‘사자(死者)의 書’들은 이렇게 미래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란시아 書’의 가르침이나 佛敎의 가르침은 우주의 모든 현상들을 하나의 유기적 체계를 이루는 전체성(全體性)의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하나의 특정한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바라보기에, 개별적 현상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들이 ‘너’와 ‘나’, ‘이것’과 ‘저것’이라는 상대적 관계를 가지지만 본질적 관점에서는 이런 상대적인 관계를 넘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으며 또한 모든 것에 무한한 가능태(可能態)가 내재한다는 것이지요.
우주에서 영적진화의 첫 번째 고리인 인간에서 두 번째 고리인 모론시아 존재로의 상승과정이 이렇게도 복잡한데, 무한의 절대차원을 향한 진화의 전체과정은 어떨지 우리가 가늠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인간의 삶을 통하여 인식된 자아의 정체성이 육신의 죽음 이후에는 모론시아 개체로 이어져 인간의 자아생존이 이루어지며, 이렇게 삶과 죽음을 통한 단계적인 진화가 무한의 절대차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계속되어 종국에는 화려한 나비의 꿈이 실현된다는 거지요.
지금까지 이곳저곳을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돌아보았습니다. 종교적 의미에서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구원은 인간에게 베푸는 神의 은총일까요? 책의 설명에 따르면 수억 년에 걸친 오랜 동물적 진화의 과정에서 돌연변이로 출현한 변종(變種)이 인간이며, 이렇게 출현한 인간에게, 비록 사람이 인식하지는 못하더라도, 神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다고 합니다. 신비주의 철학자인 ‘에크하르트’는 “인간은 모든 진리를 자체 내에 담지하고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으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영적진화의 모든 과정들에서 여러 靈들과 수많은 하늘 존재들의 보살핌이 있다고 하지만, 진화하는 개체들이 내재하는 神의 ‘영-본성’에 대한 견고한 믿음과 그 믿음의 체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우주의 총체적인 실상에 대한 깨달음을 통하여 스스로 구원의 탑을 한단 한단씩 쌓아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연재를 하면서 그동안 메모해두었던 것을 정리하며 많은 곳을 수정하고 어떤 것은 다시 쓰고 보니, 우리네 사고(思考)와 인식의 폭이 계속 발전하고 확장되기에 이번 글도 언제는 다시 고쳐 써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막 난 글로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알아볼 수는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다른 주제로 사족을 달아볼까 합니다.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0-14 독자 게시판에서 복사 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