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편: “자아는 물질적이던, 모론시아적이던, 또는 영적이던 우주의 실재다. 인격의 실현은 우주 아버지 자신이 또는 그의 다양한 우주의 대리자들을 통하여 행하는 증여다. 어떤 존재가 인격적이라는 것은 그런 존재가 우주의 유기체 안에서 상대적인 개별화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우주 아버지로부터 인간에게 증여된 ‘영-본성’이 인간의 자아로 표현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론시아적 자아는 모론시아 개체에 내재하는 ‘영-본성’, 그리고 영적 자아는 영적존재에 내재하는 ‘영-본성’이 각각 모로시아적 자아, 영적 자아로 표현되겠지요. 이렇게 우주의 모든 개체들에 내주하는 ‘영-본성’이 발현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자아가 우주의 실재(實在)로, 뒤집어 말하면 “‘영-본성’이 우주의 실재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 아버지로부터 증여된 동일한 ‘영-본성’이 이렇게 물질적, 모론시아적, 그리고 영적 자아로 차별적인 정체성으로 나타나는 것은 각각의 개체들이 처한 차원에서 개별적인 인식-프레임의 차이와 영적수준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모든 개체들이 인식하는 자아의 정체성에 상대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佛家에서는 실재(實在)에 대한 탐구에 체(體),상(相),용(用)의 3가지 측면에서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체(體)란 일체 현상들의 근원을 말하며, 상(相)은 체(體)가 발현된 현상을, 용(用)은 체(體)의 작용을 말합니다. 앞에서의 “유란시아 필사자들에게 증여된 ‘영-본성’의 전형은 자아-표현 또는 인격-실현에 일곱 차원들의 잠재성이 있다.”라는 기술에서 ‘영-본성’과 자아(自我), 그리고 인격(人格)의 관계를 불교의 논리로 살펴보면, ‘영-본성’은 모든 개체들의 ‘자아’라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근원으로서 ‘체(體)’에 해당하고, 자아(自我)는 내재하는 ‘영-본성’이 사람의 영적 통찰력으로 감지되어 인식-프레임에 나타난 상(相)의 측면이라고 한다면, 인격(人格)은 그렇게 발현된 ‘영-본성’이 주변의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품격으로서 용(用)의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본문에서 “어떤 존재가 인격적이라는 것은 그런 존재가 우주의 유기체 안에서 상대적인 개별화를 인식한다는 것이다.”라는 기술도 우주의 총체적 유기체 안에서 영적으로 진화하는 모든 개체들에 증여된 동일한 체(體)인 ‘영-본성’이 차등적으로 발현된 ‘相’인 개별적 ‘자아’가 다른 개체들의 ‘자아’와 영적으로 관계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은 체(體)인 ‘영-본성’이 가지는 ‘용(用)’의 측면으로서 인격적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어떤 존재가 인격적이라는 것은 다른 개체들 각각에 내주하는 ‘영-본성’이 상대적으로 발현된 ‘자아’를 우주의 유기체 안에서 각각 개별화된 실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와 지구와의 위치에 따라 상현달, 반달, 보름달, 하현달, 등의 각기 다른 모양과 이름의 달들이 밤하늘에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명칭들로 불리는 달들이 별도로 각각 다른 본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구의 그림자에 상대적으로 가려진 동일한 달의 다른 모양들을 지칭하는 이름들일 뿐이지요. 여기서 인격(人格)이라는 용어는 그 사용 범위를 우주로 확장한다면 모든 개체의 존재-격(存在-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주의 유기체 안에서 자아의 상대적인 개별화를 인식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196편에서 “실재에 대한 점진적인 이해는 神에께 접근하는 것과 동등한 것이다. 神의 발견, 실재와의 동일성에 대한 의식은 자아-완성, 즉 자아의 완전함, 자아의 총체성을 체험하는 것과 동등한 것이다. 총체적 실재의 체험은 神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 神을 아는 체험의 종국(終局)이다.”라고 합니다.
인간에서 출발하여 모론시아 존재, 그리고 영적 존재라는 단계별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확장되는 인식-프레임과 영적 감수성의 증대로 내재하는 ‘영-본성’에 대한 점진적인 인식과 이해의 확산이 바로 神에게 접근해가는 길이라는 거지요. 神을 발견한다는 것, 그리고 궁극적 실재와의 동일성을 의식한다는 것은 절대차원에서 무한으로 확장된 인식-프레임과 영적 감수성으로 내재된 ‘영-본성’이 완전한 神性으로 현현(顯現)되는 것이고, 이것이 자아-완성이며, 자아의 총체성을 체험하는 것으로, 자아의 총체적 실재를 체험하는 것이 神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이며, 神에 대한 체험의 종국(終局)이라는 것입니다.
불가(佛家)에서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합니다.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인간은 무명(無明)의 어두움 때문에 내재하는 불성(佛性)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불가(佛家)에서의 수행은 이렇게 가려진 무명(無明)의 어두움을 걷어내고 온전한 불성(佛性)을 깨닫기 위한 것이지요. 수행자의 근기(根機)에 따라 어떤 사람은 수행 중에 어느 순간 갑자기 하늘의 먹구름이 흩어져 파란 하늘이 드러나듯이 불성(佛性)의 찬란한 광명을 바로 볼 수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무수한 겁(劫)의 윤회를 통하여 무명(無明)의 어두움을 한 겹씩 벗겨내고 종국에는 온전한 불성(佛性)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합니다. 분별적인 사유(思惟)나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함이 없이 직접적인 체험을 통하여 불성(佛性)을 바로 보고 깨닫는 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하고, 이렇게 내재하는 불성(佛性)을 견성(見性)하면 바로 깨달은 사람(覺者)인 부처라고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은 아버지처럼 영원하며, 이것은 신의 실제적 단편인 신성한 생각 조절자가 그런 것처럼, 신이 그 자신의 자유의지 선택으로 주어진 ‘영-본성’도 그렇다. 사람의 ‘영-본성’은 영원하지만 정체성으로 본다면 조건화된 영원한 실재이다.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나온 ‘영-본성’은 神格의 숙명에 이를 것이지만, 사람은 그러한 숙명의 도달에 참여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런 선택이 없을 때에는, ‘영-본성’은 체험적 神格을 직접이루며, 최고 존재의 한 부분이 된다. 순환은 운명 지어져 있지만, 그 순환에 사람이 참여하는 것은 선택적이고, 개인적이며, 또한 체험적이다.”
神으로부터 주어진 것은 영원하기에 “사람의 ‘영-본성’도 영원하지만 정체성으로 본다면 조건화된 영원한 실재이다.”라고 합니다. '영-본성‘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어서 “영-본성‘은 神格의 숙명에 이를 것이지만, 사람은 그러한 숙명의 도달에 참여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해야만 한다.”라고 합니다. 신으로부터 증여된 ‘영-본성’이 진화하고 변천해서 神格이 된다는 뜻일까요?
앞에서 물질적이든, 모론시아적이든, 또는 영적이든 모든 자아는 우주의 실재이며, ‘영-본성’이 모든 개체들의 자아로 표현된다고 했습니다. 앞장에서 “‘영-본성’은 변화에 직면하여 변화하지 않는다.”라고 그 속성을 기술한 것처럼, 神으로부터 증여된 ‘영-본성’은 불변이며 영원하지만, 우주 유기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들의 자아로 표현되는 ‘영-본성’은 각각의 개체들이 처한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다른 상(相)으로 인식하게 되어 차등적인 자아의 정체성으로 나타나며, ‘영-본성’에 대한 개체들의 인식이 단계별로 확장되는 과정을 영적진화라고 하지요. 인간에게 증여된 ‘영-본성’은 근원적으로 완전한 神性이지만, 우주의 이법(理法)을 수용할 수 있는 개별적 근기(根機)에 따라 차등적인 현상으로 발현되고, 계속되는 영적진화를 통하여 최종 단계에서는 궁극적 실제인 神性으로 완전하게 현현(顯現)되어 神格과 합일을 이룬다는 것이지, 영원하고 변함이 없는 ‘영-본성’ 자체가 진화하여 神格에 이른다는 것은 아니지요.
위의 본문에서 “사람은 그러한 숙명의 도달에 참여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해야만 한다.”라고 했습니다. 우주의 긴 진화과정을 통하여 내재하는 ‘영-본성’이 神性으로 완전하게 현현(顯現)되어 神格에 이를 것인지의 여부는 인간의지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이지요. 책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살아있는 우주는 실재적 단위들이 거의 무한하게 통합된 집합체이며, 모든 실재적 단위들은 전체의 운명에 상대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단위들은 운명의 수용 또는 운명의 거부에 대한 실제적인 선택권을 부여받았다.”, “자유의지 피조물 신분의 우주-표지인 바로 이 선택의 힘이 사람의 가장 위대한 기회와 그의 최고 우주적 책임을 성립한다. 미래 최종자의 영원한 운명은 인간 의지의 성실에 달려 있다.; 신성한 조절자는 영원한 ‘영-본성’을 위하여 필사자의 자유의지의 성의에 의존한다.; 우주 아버지는 새로이 상승하는 아들의 실현을 위하여 필사자의 선택의 충실함에 의존한다.; 최고 존재는 체험적 진화의 실제성을 위하여 결단-행동들의 지혜와 불변성에 의존한다.”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우주 유기체는 모든 물질적, 모론시아적, 그리고 영적 자아들의 집합체인 반면에, 살아있는 우주를 이루고 있는 우주 실재들은 그들 자신이 영적 진화를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인 자유의지가 있기에 우주 전체의 운명은 또한 우주실재들의 자유의지에 상대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지요. 이렇게 우주에서 영적진보의 모든 과정은 개체들의 자유의지에 의한 진화의 선택과 수용, 선택에 임하는 충직하고 성실한 충실성(忠實性), 수행과정의 정성스러운 성의(誠意), 그리고 진화의 모든 단계들의 개별적인 삶에서 자유의지의 지혜로운 선택과 중단 없는 지속성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사람의 ‘자유의지’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면; 36편에서 “새로운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명운반자들이 도덕적 결정과 영적 선택의 의지를 가진 존재를 나게 하는데 일단 성공하면, 그때 그들의 일은 끝난다. - 그들은 끝이다. 그들은 진화하는 생명을 더 이상 조종할 수 없다.”, 118편에서 “모든 의지는 상대적이다. 근원적인 의미에서, 오직 ‘스스로 그러하신’-아버지만이 의지의 궁극성을 가진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오직 아버지와 아들과 靈만이 시간으로 제약되지 않고 공간으로 무제한적인 의지의 특권들을 나타낸다. 사람은 선택의 힘인 자유의지를 타고났으며,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절대적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한 차원에서 그리고 선택하는 ‘영-본성’의 운명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최종적이다.”, “보다 높은 마음들에 의해 생성된 구조들은 그들의 창조적 원천들이 자유롭도록 작용한다, 그러나 어떤 정도까지는 모든 종속적인 지능들의 활동을 한결같이 제한한다. 우주들의 피조물들에게 이 제한은 우주들의 구조로 명백해진다. 사람은 속박을 받지 않는 자유의지를 가진 것이 아니다; 그의 선택의 범위에 제한들이 있다, 그러나 이 선택의 반경 안에서 그의 의지는 상대적으로 주권적이다.”, 그리고 130편에서 “같은 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진리를 처음 들었으며,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의지는 주관적 의식이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표현하도록 할 수 있고, 神과 같이 되려고 열망하는 현상을 체험할 수 있는 인간 마음의 표현이다.’ 그리고 모든 사려 깊고 영적인 마음을 가진 인간은 창조적이라는 것도 바로 같은 의미이다.”라고 합니다.
지구라는 행성에 생명운반자에 의해서 바다에서 시작된 생명체는 오랜 진화의 과정을 거쳐 동물로 발전하였고, 약 100만 년 전에 영장류로부터 도덕적 결정과 영적 선택의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타고난 선택의 힘인 자유의지는 인간 마음의 표현으로 우주의 구조적 질서에 따라 시간과 공간의 틀 속에서 선택의 반경에 제약이 있으며, 제약된 이 선택의 반영 안에서만 상대적인 주권을 가진다는 것이지요.
위의 본문에서 “우주 아버지는 새로이 상승하는 아들의 실현을 위하여 필사자의 선택의 충실함에 의존한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들의 실현’이란 영적으로 진화하면서 낙원을 향해 상승하는 모든 우주의 개체들이 우주 아버지로부터 증여되어 내재하는 ‘영-본성’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여, 철이 없던 아들이 성장하여 아버지처럼 되듯이, 神性을 체득하고, 앞에서 “영-본성‘은 神格의 숙명에 이를 것”이라는 본문과 같이 神格과의 합일을 이루는 것으로, 神도 모든 개체들의 영적진보와 그 결과에 대해서는 각 개체들의 자유의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인간들은 오직 물질적 감각에서만 정체성을 갖는다. 自我의 그런 특성들은 지성의 에너지 체계에서 작용하는 물질적 마음에 의해서 나타난다, 사람이 정체성을 갖는다고 말할 때, 인간에 내재하는 ‘영-본성’ 의지의 행위들과 선택에 종속하는 마음 회로를 그가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태아가 인간 생명의 일시적인 기생 단계인 것처럼 물질적이며 순전히 잠깐 동안의 顯現이다. 우주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들은 시간의 상대적 순간 속에서 태어나고, 살며, 그리고 죽는다.; 그들은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필사자의 ‘영-본성’은 그 자신의 선택을 통하여 그 정체성의 자리를 한때의 물질-지성 체계로부터, 생각조절자와 공동으로 ‘영-본성’의 顯現을 위해 새로운 매체로 창조된 보다 높은 모론시아-혼 체계로 전환하는 힘을 소유한다.”
神으로부터 인간에게 ‘영-본성’이 증여 되었지만, 인간은 태생적으로 물질적 진화의 소생이기에, 내재하는 ‘영-본성’의 발현에 의한 개별적 자아의 정체성은 단지 물질적 감각을 통하여 물질적 마음에 나타나는 것이 그 한계라는 겁니다. “우주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들은 시간의 상대적 순간 속에서 태어나고, 살며, 그리고 죽는다.”는 기술처럼 인간의 물질적 차원에서 ‘영-본성’의 발현으로 표현되는 자아의 정체성은 우주의 관점에서는 찰나적 현상으로, 이런 찰나의 현상을 넘어 진보된 ‘영-본성’의 발현을 위해서는 영적진화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위의 본문에서 “‘영-본성’은 그 자신의 선택을 통하여 그 정체성의 자리를 한때의 물질-지성 체계로부터, 생각조절자와 공동으로 ‘영-본성’의 顯現을 위해 새로운 매체로 창조된 보다 높은 모론시아-혼 체계로 전환하는 힘을 소유한다.”라는 설명처럼 이런 영적진화의 원동력이 ‘영-본성’에 있다는 것입니다.
줄탁동기(?啄同機)라는 말이 있습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하기 위해서는 병아리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앞에서 “우주 아버지는 새로이 상승하는 아들의 실현을 위하여 필사자의 선택의 충실함에 의존한다.” 그리고 “‘영-본성’은 그 자신의 선택을 통하여 그 정체성의 자리를 한때의 물질-지성 체계로부터, 생각 조절자와 공동으로 ‘영-본성’의 顯現을 위해 새로운 매체로 창조된 보다 높은 모론시아-혼 체계로 전환하는 힘을 소유한다.”라고 했습니다. 우주를 통한 기나긴 영적진화의 모든 과정은 각각의 개체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와 내재하는 ‘영-본성’이 생각 조절자와 공동으로 상호 협력하는 줄탁동기(?啄同機)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0-14 독자 게시판에서 복사 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