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란시아 書와 佛經(14)   11-07-20
E.T   915
 

삶과 죽음 (2)


111편에서
“사람의 물질적 마음은, ‘모론시아’의 천을 나르는 우주의 베틀이고,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는 그 위에 지속하는 가치와 신성한 의미들의 우주의 특성을 가진 靈-패턴들을 누비며, 이것이 잠재적 최종자로서 궁극의 운명과 끝나지 않는 생애로 인간의 죽음에서 살아남는 혼이다.”라고 했으며, 앞의 글에서 인용한 112편에서는 “죽음에서 살아남는 실재적인 어떤 것, 인간 진화의 어떤 것, 신비 감시자에 추가되는 어떤 것이 있다. 새롭게 나타나는 이 존재는 혼이며, 이것은 너희의 물리적인 몸과 물질적인 마음 둘 모두의 죽음에서 생존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섬유공업이 발전해서 자동직기로 원단을 대량 생산하지만, 베틀이라고 하면 얼핏 한산모시가 떠오릅니다. 모시의 재배에서부터 여러 단계들에 걸친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한산모시는 아낙네들과 땀과 정성의 산물이지요. 물질적 마음의 베틀에 ‘생각 조절자’가 우주의 가치와 신성한 의미들로 ‘혼’이라는 靈-패턴의 직물을 짠다고 합니다. 위의 본문에서 말하는 “
지속하는 가치와 신성한 의미들의 우주의 특성”이란 앞의 3장에서 “‘영-본성’의 유한한 차원들은 우주의 세로, 가로 그리고 폭과 관계를 가진다.; 세로는 의미를 나타내며, 가로는 가치를 의미하고; 폭은 통찰력─우주 실제의 불변의 의식을 체험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라는 기술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람이 영적 감수성으로 인식한 내재하는 ‘영-본성’의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렇게 짜여진 靈-패턴의 직물인 ‘혼’을 통하여 인간의 자아가 진화의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베틀에서 모시를 짜는 일은 바람이 불거나 비오는 날에는 일을 할 수가 없으며, 한여름의 더위에도 통풍이 되지 않는 움집에서 가지런하게 정련(精練)된 날줄들 사이로 한 올 한 올 씨줄을 엮는 아낙네의 땀과 정성이 들어갑니다. 30cm의 모시 한 폭에 80올의 날실이 들어간 것을 1‘새’라고 하며, 한 폭에 10‘새’ 이상이 들어간 모시를 세모시라고 하지요. 마음의 베틀에 걸린 날실도 마음에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마음의 결이 엉클어지기에 ‘혼’의 靈-패턴을 짜기 위해서는 마음에 쌓여있는 찌꺼기들을 털어내고 격랑이 가라앉아 가지런히 정련(精練)된 고요한 마음결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모시의 올이 굵은 것은 한 폭에 들어가는 ‘새’가 적어서 거친 모시가 나오고, 모시 올이 곱고 잘 정련된 것은 10‘새’이상도 들어가 질 좋은 세모시가 나오듯이, 마음의 결이 가지런한 정도에 따라 靈-패턴의 폭에 들어갈 날줄의 ‘새’가 결정되고, 씨실이 되는 ‘영-본성’의 의미와 가치도 개개인이 인식하고 지각한 정도에 따라 씨줄의 올수가 결정되기에 ‘혼’이라는 靈-패턴의 직물도 개개인의 마음결과 인식된 ‘영-본성’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문양들이 나오며, 이렇게 탄생한 ‘혼’은 사람들 개개인의 자의식(自意識)으로 육신의 죽음을 넘어 초기 모론시아 존재의 자아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여기 잠깐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생각 조절자’와 인간과의 상관관계를 간단히 살펴봅니다. 101편에서 “‘생각 조절자’는 자신의 표현을 위한 특별한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경건한 감정들의 수용과 표현을 위한 영감(靈感)의 경건한 능력이 없다. 이런 체험들은 인간 마음에 자연적으로 정해진 장치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거기에 생각 조절자가 항상 내주하는 물질적 마음과 직접적 교통을 이루는데 조절자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이 있다.” 그리고 “신성한 영은, 느낌이나 감정으로가 아니라, 가장 높고 그리고 최고로 영화(靈化)된 사고(思考)의 영역에서 사람과 접촉을 이룬다. 너희를 神으로 인도하는 것은 너희의 느낌들이 아니라 너희의 생각들이다. 신성한 본성은 오직 마음의 눈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내주하는 ‘조절자’를 듣고, 神을 정말로 지각하는 마음은 순수한 마음이다.”라고 합니다.

‘생각 조절자’는 앞의 2장에서 살펴본 111편에서 언급하고 있는 ‘영적 충동’, ‘위대한 마음의 높은 목표’, ‘거시적 관점’, ‘상승하는 진보적 계획’, ‘우주 지능의 섬광’, ‘지성의 훈련’, 등과 같은 神의 경건한 감정들을 사람에게 직접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사람도 ‘생각 조절자’의 그런 경건한 표현들을 직접 받아들일 능력이 없으며, ‘생각 조절자’는 글자 표현 그대로 단지 사람의 물질적 마음의 작용인 사고(思考)를 통해서만 사람과 교통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생각 조절자’와 사람의 사고(思考)간의 교통에 대하여 107편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절자’가 증여된 후 사람이 육체적으로 성숙하는 20살이 될 때까지는 물질적 마음의 ‘사고(思考) 패턴’에 점진적으로 영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서 사람의 생각의 바꾸는 ‘생각 변경자(Thought Changer)’로 작용하며, 20살 이후부터 주변 환경들에 대한 분별의식이 확장하는 연령대인 40세까지는 영적으로 변화된 ‘사고(思考) 패턴’을 조절하는 '생각 조절자(Thought Adjuster)'로, 그리고 이후에 육신의 죽음까지는 ‘생각 조정자(Thought Controller)’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이런 ‘생각 조절자’의 작용에 대해서 48편에서는 “인간의 육신으로의 기간에 신성한 靈이 너희 속에 내주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우주 아버지가 증여한 靈이 사람에게 침입한 것으로 거의 별개(almost as a thing apart)로 내주한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신성한 靈인 ‘생각 조절자’는 물질적 마음의 느낌이나 감정으로가 아니라, 가장 높고 그리고 최고로 영화(靈化)된 사고(思考)의 영역에서 사람과 접촉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 조절자’가 사람과의 실제적인 접촉을 이루기 위해서 앞에서 107편의 설명처럼 그 기능이 세 단계로 구분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간의 삶속에서 ‘생각 조절자’의 작용으로 마음의 사고(思考) 패턴이 영적으로 변화되는 것은 제한적이며 미미하기에 ‘생각 조절자’와의 접촉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마치 용량이 작은 컵에 바닷물 전부를 부어도 작은 컵의 용량이외에는 모두 흘어 넘치듯이, 앞에서 48편의 기술처럼 ‘생각 조절자’와 사람과의 접촉은 실제적으로 미미하며, ‘생각 조절자’는 사람의 일생동안 거의 별개로 내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사람의 물질적 마음의 한계로, 앞의 글에서 살펴본 39편의 “너희들이 이 첫 번째의 삶에서 배우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삶을 살아가는 경험이다.”라는 구절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위의 본문에서 “사람의 물질적 마음은, ‘모론시아’의 천을 나르는 우주의 베틀이고,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는 그 위에 지속하는 가치와 신성한 의미들의 우주의 특성을 가진 靈-패턴들을 누비며, 이것이 잠재적 최종자로서 궁극의 운명과 끝나지 않는 생애로 인간의 죽음에서 살아남는 혼이다.”라는 기술은 ‘혼’의 탄생과 연관된 ‘생각 조절자’의 역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 조절자’가 골방의 베틀 앞에 앉아서 땀을 흘리며 씨줄을 엮어가는 아낙네처럼, ‘생각 조절자’가 사람의 마음의 베틀위에 ‘혼’의 靈-패턴을 직접 짠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위의 본문을 “우주의 베틀인 사람의 물질적 마음위에 격랑이 가라앉아 가지런히 정련(精練)된 고요한 마음의 결을 날줄로 하고, ‘생각 조절자’에 의해서 고양되고 영화(靈化)된 지성적 사고(思考)가 인식한 ‘영-본성’의 신성한 가치와 의미들을 씨줄로서 사람의 마음에 자연적으로 정해진 장치통하여 우주의 특성을 가진 靈-패턴이 짜여 지며, 이렇게 짜여 진 직물이 ‘혼’이다.”라고 조금은 다르게 풀이합니다. ‘생각 조절자’의 작용으로 고양된 인간의 지성적 사고(思考)가 인식한 내재하는 ‘영-본성’의 신성한 가치와 의미들을 씨줄로 靈-패턴을 짜기에 사고(思考)의 점진적인 진보에 따라, 앞에서 살펴본 “진리는 진보하는 자아인 ‘혼’의 체험이다.”라는 기술처럼, 이에 상응하여 사람마다 다양한 靈的 문양의 ‘혼’들이 창조되는 것 같습니다.

107편에서는 ‘생각 조절자’를 “그들은 神으로 부터이며,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한 그들은 神이다.”라고 정의합니다. 위의 본문에서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는 그 위에 지속하는 가치와 신성한 의미들의 우주의 특성을 가진 靈-패턴들을 누비며,”라는 구절을 神인 ‘생각 조절자’가 인식하는 우주의 지속적인 가치와 신성 의미들로 직접 ‘혼’의 패턴을 짠다고 읽는다면, 모든 ‘혼’의 패턴들은 처음부터 완전한 문양으로 전혀 차별이 없으며, ‘진보하는 자아인 혼’이라는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짜여진 靈-패턴인 ‘불멸의 혼’은 ‘생각 조절자’나 ‘영-본성’같이 불변의 영적실재가 아니라, 인간으로의 삶뿐만이 아니라 이어지는 모든 진화과정들에서도 끊임없이 진화하며 확장되는 ‘영-본성’에 대한 개체들의 자의식(自意識)애 따라 계속 진화합니다. 그렇기에 위의 본문에서도 ‘혼’을 인간 진화의 어떤 것, 신비한 충고자에 추가적인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앞의 글에서 인용한 112편에서 ‘혼’을 “이 존재는 신성한 ‘너’인 ‘조절자’와 연결된 인간인 ‘너’의 삶과 노력들이 결합된 공동의 자녀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성한 ‘너’인 ‘조절자’는 무슨 의미일까요? 앞에서는 神의 단편인 ‘생각 조절자’는 사람에게 내재하는 神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생각 조절자는 ‘나’이고, 내가 바로 神이라는 의미일까요? 앞 장에서는 내재하는 ‘영-본성’의 발현으로 자아의 정체성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영-본성’의 발현으로 표현되는 자아와 ‘생각 조절자’로서 ‘나’라는 두 개의 ‘나’는 어떤 관계이며,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48편에서 “인간의 육신으로의 기간에 신성한 靈이 너희 속에 내주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우주 아버지가 증여한 靈이 사람에게 침입한 것으로 거의 별개(almost as a thing apart)로 내주한다. 그러나 모론시아 삶에서는 靈이 너희 인격(존재-격)의 실제적인 한 부분이 될 것이며, 너희가 570번에 걸친 진보적 변환들(570 progressive transformations)을 성공적으로 통과함으로, 너희는 피조물의 삶의 물질적 신분으로부터 영적 신분으로 상승한다.”라고 합니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삶의 큰 문제는 삶에서의 조상전래의 성향들을 신비 충고자의 신성한 현존으로 시작되는 영적 충동의 요구들에 맞추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육신으로서의 인간의 삶은 동물적 본성의 물질적 성향들을 기반으로 하며,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는 위의 본문에서 “인간의 육신으로의 기간에 신성한 靈이 너희 속에 내주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우주 아버지가 증여한 靈이 사람에게 침입한 것으로 거의 별개로 내주한다.”라는 기술처럼 실제적으로는 사람의 일생 동안에 거의 별개의 관계로 단지 사람의 思考체계에만 영향을 부분적으로 미칠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거의 별개로 내재하는 ‘생각 조절자’의 작용으로 사람의 물질적 사고(思考) 체계가 점차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내재하는 ‘영-본성’을 감지하여 자아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육신의 죽음을 넘어 생존하는 ‘혼’이 창조되는 등 영적진화의 출발선에 서있는 사람에게는 전환점의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지요.

위의 본문에서 “그러나 모론시아 삶에서는 靈이 너희 존재-격(인격)의 실제적인 한 부분이 될 것이며, 너희가 570번에 걸친 진보적 변환들(570 progressive transformations)을 성공적으로 통과함으로, 너희는 피조물의 삶의 물질적 신분으로부터 영적 신분으로 상승한다.”고 합니다. 비록 인간으로서의 삶 동안에는 ‘생각 조절자’와의 접촉과 그 결과가 제한적이며 미미했지만, 다음 단계인 모론시아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개체들은 570번에 달하는 새로운 몸을 받는 변환과정을 거치는 점진적인 진화를 통하여 ‘생각 조절자’와의 관계가 확장되며, 이렇게 확장되는 ‘생각 조절자’와의 관계는 새롭게 변환되는 개체들의 존재-격에 실제적으로 반영되며, 결국에는 모론시아 세계들의 물질적 ‘몸’을 벗어나 초우주로 상승하는 ‘영적신분’으로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과 모론시아의 삶에서 내재하는 ‘생각 조절자’와의 상호관계와 작용에 차이가 나타내는 이유를 책에서는 인간의 물질적 마음과 모론시아 존재가 증여받는 우주적 마음의 차이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이어지는 글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앞의 3장에서 인용한 본문에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나온 ‘영-본성’은 神格의 숙명에 이를 것”이라고 했으며, 앞에서 인용한 101편에서는 “너희를 神으로 인도하는 것은 너희의 느낌들이 아니라 너희의 생각들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내재하는 ‘영-본성’이 완전한 神性으로 발현되어 神格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진화의 모든 단계에서 ‘생각 조절자’의 작용으로 개체들의 생각이 영적으로 진화되고, 이에 따라 개체들의 인식-프레임이 진보함으로 ‘영-본성’의 실제(實際)를 감지하고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앞의 5장에서 “‘조절자’와 ‘영-본성’은 변화하지 않는다.; 혼(魂)속에서 이들의 관계는 다만 변화, 계속되는 진화일 뿐이다.”라는 기술도 모론시아 세계들에서의 진화에서 570번에 달하는 개체들의 ‘몸’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창조되는 ‘혼’속에서 ‘조절자’와 ‘영-본성’은 그 자체가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주하는 개체들과의 상관관계가 진화하고 발전함에 따라 새롭게 진화된 ‘혼’들이 창조된다는 거지요.

‘생각 조절자’를 신성한 ‘너’라고 표현한 것은 모든 진화의 과정에서 ‘생각 조절자’의 작용과 ‘영-본성’의 발현은 각각 별개의 과정이 아니라 동전의 앞면과 뒷면같이 동시성을 가지며, 진화의 종국(終局)에는 ‘생각 조절자’와의 완전한 융합으로 잠재적인 ‘영-본성’이 온전한 神性으로 현현되어 神과의 합일이 이루어지기에, ‘생각 조절자’가 증여된 ‘인간은 잠재적 神’으로 내재하는 ‘생각 조절자’는 미래의 신성한 ‘너’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육신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은 잠재적인 神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神을 찾아 헤매는 미망속의 존재로, 佛家에서도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에 모두가 잠재적인 부처이지만 단지 깨닫고 있지 못할 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죽음에서 살아남는 ‘혼’이 진화의 다음 단계인 모론시아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112편에서
“보다 더 영적으로 그리고 우주적으로 진보된 필사자들이 죽으면, 그들은 즉시 맨션세계들로 나아간다.; 일반적으로 이 규정은 그들에게 배정되었던 개인적인 ‘세라핌’ 수호자들과 같이 적용된다. 다른 필사자들은 그들의 일들에 대한 판결이 완료될 때까지 지연되며, 그 후에 그들은 맨션세계들로 향하거나, 또는 현재의 행성 섭리가 끝날 때 전체로 다시 개체화될 수 있는 잠자는 생존자들의 집단에 배정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순간에 비유되는 인간의 삶의 결과가 다음 생으로의 진화과정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간명하게 전해주는 하늘존재의 충고로, 앞의 3장에서 인용한 165편에서 예수님이 그의 사도들에게 “무엇을 먹을지 또는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지 하는 세속적 삶의 것들을 염려하거나 걱정하지마라. 혼의 복지가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영적인 진보가 의복이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라는 가르침과 같이 인간으로서의 삶의 지향점을 일러주는 것 같습니다.


위의 본문에서
“보다 더 영적으로 그리고 우주적으로 진보된 사람들의 ‘혼’은 즉시 맨션세계로 나아간다.”라고 합니다. 반면에 영적진보의 운명을 선택하였으나 영적으로도, 우주적으로도 진보하지 못한 사람들의 ‘혼’은 “그들의 일들에 대한 판결이 완료될 때까지 지연되며, 그 후에 그 혼들은 맨션세계들로 향하거나, 또는 현재의 행성 섭리가 끝날 때 전체로 다시 개체화될 수 있는 잠자는 생존자들의 집단에 배정될 것이다.”고 합니다. 육신의 죽음을 넘어 살아남는 ‘혼’은 지난 삶의 과정에 대한 판결이 완료될 때까지 진로에 대한 결정이 지연되며, 판결의 결과에 따라 어떤 ‘혼’들은 순차적으로 맨션세계로 향할 수 있지만, 판결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다른 ‘혼’들은 행성의 섭리가 끝나고 모든 살아남는 ‘혼’들이 전체적으로 모론시아 존재로 개체화될 때까지 잠자는 생존자들의 집단으로 배정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혼’들의 진로가 결정되는 “그들의 일들에 대한 판결”이란 어떤 것일까요?

인간의 삶은 “유기체(자아)와 그 환경사이에 일어나는 하나의 과정이며”, 인간의 자아로 발현되는 ‘영-본성’은 그 속성들 중에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의 상대성에 대한 의식인 도덕으로 특징지어진다. 그것은 행위 차원들을 식별하며 선택적으로 그것들 사이에 차이를 나타낸다.”, 그리고 “도덕적 의식은 사람이 매일 매일의 행동에 대한 통제와 지침으로 지키도록 의무로서 요구하는 이런 윤리적 그리고 새롭게 생겨나는 모론시아적 가치들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자각에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합니다. 환경의 자극과 반응이라는 관계로 이루어지는 삶 속에서 내재하는 ‘영-본성’에 대한 자의식은 자아로 표현되며, 이런 인간의 삶은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거지요. 앞에서 말한 ‘그들의 일들에 대한 판단’이란 인간으로서의 삶이 걸어온 지난 과정들이 얼마나 도덕적이었나에 대한 하늘 존재들의 판단이 아닐까 합니다. 모론시아 세계로 상승하려는 ‘혼’들이 前生에서 인간으로의 삶 동안에 행동으로, 말로, 그리고 마음으로 행한 모든 것들을 도덕성에 준하여, 그리고 모론시아적 가치들에 대한 인식과 자각에 준하여 결정되는 하늘 존재들의 판결에 따라 보다 더 영적으로 그리고 우주적으로 진보된 사람들의 ‘혼’은 즉시 맨션세계로 나아가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혼’ “그 후에 그들은 맨션세계들로 향하거나, 또는 현재의 행성 섭리가 끝날 때 전체로 다시 개체화될 수 있는 잠자는 생존자들의 집단에 배정될 것이다.”라는 것이지요.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구성은 꽤나 복잡하게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동물적 본성에 잠재적 神性인 ‘영-본성’이 부여되고, 삼위일체 각각의 위(位)로부터 세 가지 靈이 증여된 반면에, 영적진보에 대한 수용이나 거부를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의지도 또한 부여되었기에, 인간의 사고(思考)와 행동에는 선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추함, 좋은 것과 나쁜 것,... 등등의 무한한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구성으로 형성된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지나온 삶의 과정들, 그리고 미래의 모론시아적 가치들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자각을 같이 어우르는 포괄적인 도덕기준이 육신의 죽음을 넘어 살아남는 ‘혼’의 진로를 결정한다는 것이지요.

한 가지 문제는 오늘을 사는 인간이 어떻게 미래의 모론시아적 가치들에 대한 인식과 자각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란시아 書’에 기술된 모론시아 세계들의 이야기를 읽고서 모론시아적 가치들을 인식하고 자각한다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시선을 다시 앞 장으로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160편에서 “명상은 마음과 영의 접촉을 이룬다.; 이완은 영적 감수성의 수용능력을 결정한다.”, 그리고 112편의 “마음이 실재(實在)를 그것의 궁극의 분석에까지 추적하면, 물질은 물질적 분별들로 사라지지만, 아직 마음에는 실재적인 것이 남아 있을 것이다. 영적 통찰력으로 물질이 사라진 후 마음에 남아 있는 그 實在를 추적하고 그것을 궁극의 분석에까지 추적하면, 그것은 마음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靈의 통찰력은 아직도 ‘영-본성의 우주 實在들과 최고 가치들을 감지(感知)할 수 있다.”라는 기술들이 인간이 어떻게 모론시아적 가치들을 인식하고 지각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0-14 독자 게시판에서 복사 된 것입니다. ]
 
꼴라쥬 11-07-21
 
간단치 않은 글이라서 죄송스런 기분으로 댓글을 올립니다. 굵은 글씨로 인용하신 유란시아 본문은 우리의 용기를 붓돋는 내용으로 이해됩니다. 반면에 해석하시는 글은 " 잠재적인 神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神을 찾아 헤매는 미망속의 존재"라는 애통함을 토로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자칫 자기 연민이나 실의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구실로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물론 제목이 무겁다 보니 어쩔수 없겠지만, 죽음이 "물질적 신분으로부터 영적 신분으로 상승"하는 첫번째 졸업식이라면 6년간의 초등학교 생활이 자랑스럽고 즐거운 추억이었으면 좋겠네요. 모론시아 중학교 진학을 못하는 사람도 졸업식은 감동의 눈물 바다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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