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에서의 가치   16-07-10
최경곤   544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은 아름답고 때로는 현란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냉혹하기도 합니다. 슬픔이 닥친 사람에게는 시간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역경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천성적으로 쉬지 않고 무언가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나아가려는 그 방향이 이 세상에서의 기쁨이나 환락이 될 수도 있고, 명예와 긍지일 수도 있고, 보람과 가치가 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사라지는 것들이겠지요. 왜냐하면, 어떤 성취나 완성이라고 해도 그것을 만드는 것들이 물질 세상에서의 물질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것은 만물이 변화하는 우주의 법칙 밑에서 결국에는 티끌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이웃과 나누는 잊지 못할 즐거움이거나, 행복가득한 삶이거나, 조화와 평화를 이룬 고도의 사회 문명이라고 해도,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문명도 결코 저절로 빛나거나 후대로 넘겨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요. 시간 속에서 싹트지만,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시간 속에서 완성은 되었지만, 완전하지 않은 것들이겠지요. 불완전하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더욱 발전하고 더욱 확대될 무한한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시간 속에서 시작되지만, 그렇게 시간을 넘어서 완성되어야할 그런 것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흔히 못 다한 사랑이나 이루지 못한 출세나 정복하지 못한 도전과 같이 성공이나 명예나 아름다움을 아쉬워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주어진 환경 때문에, 혹은 완벽하지 않은 상대방 때문에 현세적 만족을 얻지 못한 미완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을 넘어 무한하게 확대되고 완전하게 될 잠재력을 가진, 그런 시공간에서의 불완전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주에 불멸의 삶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말해서 불멸의 가치가 시간 속에서 시작되어, 시간을 초월하여 반드시 완성을 이룬다는 것을 말합니다.

111:3.7 사람의 진화하는 모론시아 혼이 하느님-의식의 가치-실현으로 진리(眞), 아름다움(美), 그리고 선(善)으로 충만되는 한, 그러한 결과의 존재는 파괴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사람의 진화하는 혼속에 영원한 가치의 생존이 없다면, 필사자 실재는 의미가 없으며, 삶 자체는 하나의 비극적인 환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까지나 진실이다: 너희가 시간 속에서 시작한 것은─그것이 만약 완결할만한 가치가 있다면, 확실하게 영원 속에서 완결할 것이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일 중에서, 영원 속에서 완성할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면, 상대방이나 환경이나 세상에서 부딪치는 악조건 때문에 흔들리는 것들은 틀림없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또 저마다 다르겠지만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이 옳은 길이어서, 매 걸음마다 참된 진리가 동행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리의 영이 이끌어주는 영원불멸의 목표이자 가치일 것입니다.

 
사트바 16-07-10
 
시간 속에서 흐르는 것은 모두 환상입니다. 사념 속에서 영속하는 진실도 영겁의 장에서는 찰나무상일 따름이니, 생주이멸의 유한계에서 초월적 가치를 정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에서는 온전한 사랑 기쁨의 지복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심리적 정신적 신념만으로, 신학적 영성으로 개인성의 부활을 장담할 수 있을는지요. 불교도 결국에는 고집멸도의 길을 지나 무념무상으로 시공간을 건너려고 하지만, 대개 커다란 마음의 벽을 만나 그것을 절대라 선포하고 항복하고 말지요.

계시는 달콤한 위로의 말이 없습니다. 그냥 사실을 드러낼 뿐입니다.

생각 없이 의미가 존재할 수 없고, 행함이 없이 가치는 존재할 수 없다고 밝힙니다. 깨달음을 구하려는 자에게는 무한하게 펼쳐진 황홀한 진리의 세상을 실체로서 드려내지만, 위로를 구하는 자에게는 어떤 진실도 드러내지 않는 듯합니다.

수십 년을 읽었다며 스스로를 깊은 세월의 진리 탐구자처럼 자랑하면서, 막상 한마디의 진리조차 발견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분이 많은 걸 봐도, 책은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자를 위해 쓰인 문장들이 많아 보입니다.

인용하신 "완결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말도 참 멋진 말이고, 지극한 마음으로 바치는 깨달음의 고백 같은 감동도 느낄 수 있지요. 그러나 "가치"가 품고 있는 행동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 의식의 장이 열릴 것이라 보입니다. 물론 도움을 받는 것이지요.

언젠가 이웃을 하느님의 구원을 얻도록 이끄는 것이 가장 가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행위 자체는 행성을 떠나는 순간, 아무런 "완결할 가치"는 없습니다. 우리보다 더 잘 아는 존재들이 수두룩하니까요.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사랑은, "지극한 심정으로 원한다면" 완결될 가치가 있지요.

특정한 대상에 가치를 놓고 평생을 다투는 티끌 같은 가치도 있고, 세 가지 보배로 우주를 관통하는 존재적 가치도 있고, 영원 무한한 차원으로의 완결을 꿈꾸는 체험적 가치도 있을 수 있지요.

참된 계시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만 드러납니다. 계시가 퇴색되고 있다면 아직 진리를 발견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블랙홀스 16-07-11
 
세가지 보배가 불교에서 말하는 삼보 같습니다만 존재적 가치, 체험적 가치는 무슨 기준이 있는건지요.
          
사트바 16-07-12
 
불교에서 일체유심, 성주괴공, 무시무종의 가르침들이 존재적 진리에 대한 각성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완결할만한 가치는, 깨달음이 아니고 체험을 말하는 것이라서 기준이 있을 리 없고 저마다 부딪치는 삶의 환경에서 참된 것을 목표로 정진하며 각자가 정하는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체험적 가치는 유란시아 책의 글처럼,  기준이 있을 수가 없겠습니다만, 계시에서 밝힌 대로, 증여받은 개인성의 존재적 잠재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체화하는 것, 그것이 아마도 스스로 정하는 기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개인의 생각입니다.
     
블랙홀스 16-07-23
 
답변 감사합니다.
말씀 중에 '존재적 잠재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체화하는 것'이 각자의 기준이라고 하셨는데. 의미는 잘 이해가 됩니다만, 실제로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발견하고 실체화 할 수있을지, 선언적 의미의 선문답 같아서 답답함이 풀리질 않습니다. 현실문제가 각자 다르니 정답은 없겠지만요.
          
사트바 16-07-25
 
어렵게 보면 한없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아주 가까이 있다고 합니다.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행동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도 있듯이, 하느님의 뜻은 신성이 특징이고, 신성은 힘과 함께 진미선과 공의와 자비이겠지요. 하느님의 뜻을 모르기보다는, 실천하기를 미루며 사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나태하고 이기적인 의식에 굴복 당하지 말라고 엄청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몰라도, 유란시아 책을 몰라도 바른 삶을 성취하는 수행과 실천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팔정도가 수행과 증득을 위한 삶의 방편이라면, 마치 구원을 얻기 위한 성스러운 이기적 몸부림으로 정의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함정인데, 이것이 생존에 필요한 자생력이자 하느님의 뜻을 아는 사람의 특권이 된다면, 외견상으로 똑같은 삶이지만 동기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란시아 책이 모든 의문을 해소하는 계시이지요.

하느님은 성취보다는 동기를 보신다는 글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체로서 발견하고 실천하는 일은, 더구나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밝히는 진리 앞에서는, 신성을 발견하려는 그 동기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꼴라쥬 16-07-12
 
성취가 어려운 것을 최선을 다해 추구한다면, 결국에는 성취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물질 세상의 성공이나 육체적 명성이 아닌, 어떤 시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할 수 있는 정신적 성취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현세에서 미완성으로 끝나는 초월적 사랑이, 불멸의 세상에서 완결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토파즈 16-07-12
 
생각조절자와 같이 만드는 혼에 진미선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에요. 그게 없는 혼은 우주 물질로 흡수되고 존재도 사라져요.
원시인의 기도와 현대인의 기도 
초우주와 초은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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