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님   16-06-04
코너킥   534
 

세례 이후에 예수님의 주권이 사실상 완료되었다는 설명은, 우주에 관한 내용이라서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1,2,3부의 하느님, 우주, 인간의 운명을 알아야만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제 기억으로는 필사자의 영원한 운명이 칠중 하느님을 통해 달성되고, 치열한 삶의 결실에서 시작된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펼치신 진리나 증여의 목적도 그러한 우주 아버지의 뜻을 계시하는 것으로 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주 아버지의 절대성에서 나오는 모든 영원하고 무한한 사랑과 권능과 영광의 빛을 우주 공간에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일곱 번 증여에 대한 119편의 글에서 많은 이야기가 좀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주권에 관련된 부분만 요약하면, 책에서 계시하는 전반적인 내용들이 좀더 분명하게 이해됩니다.


"그가 자신이 창조한 지능존재들을 찾아서 똑같은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은, 모든 창조주 아들들이 스스로-만든 사물과 존재들의 우주에 대해 충분하고 그리고 최극의 통치를 하기 위하여 반드시 지불해야 할 대가이다." [120:0.1]

"자신이 창조한 존재들 중 한 집단의 유한 체험을 획득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그리고 스스로, 더 큰 공헌을 하게 될 낙원천국 협력체 안에서, 우주의 주권을 성립시키는 일에 한 걸음 더 기여하게 될, 낙원천국 협동에서의 필수적 체험도 함께 획득하였다." [120:0.3 ]

일곱 번 증여에 이중 목적이 있었다. 첫째로, 완벽한 주권을 행사하기에 요구되는 창조체 납득의 체험적 완성이며, 일곱 증여들을 모두 마친 후에야 낙원천국 삼위일체의 최극 대표자 자격으로 통치할 수 있다. 둘째로, 낙원천국 삼위일체 개인성의 뜻에 자발적으로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일곱 번째이자 최종 증여인 유란시아의 증여에는 우주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였다." [120:0.4]

"그러므로 미가엘은 창조체 납득하는 체험과 창조주들의 칠중 위상의 신성한 뜻을 병합시켰다. 그의 권한은 우주 창조체의 실제 체험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므로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그의 주권은 낙원천국 신의 일곱 단계 관점과, 시간과 공간 세계에 속한 창조체들의 관점을 동시에 하나로 통합한 것이므로 최극이다."[120:0.5]

위 4개의 문단의 글처럼, 예수님의 삶은 한편으로는 우주 아버지의 뜻을 계시하고 실천하는 체험이며, 다른 한편은 아버지의 뜻을 하는 창조체의 삶을 계시하고 살아가는 체험입니다. 따라서 세례를 받고 성취한 증여의 완성은 아마도, [120.0.4]에서 말하는 첫째로, 완벽한 주권을 행사하기에 요구되는 창조체 납득의 체험적 완성이라고 봐야 합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이 세례받기 전까지 성취했던 삶의 체험으로. 이미 주권 획득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바로 "신의 일곱 단계 관점과, 시간과 공간 세계에 속한 창조체들의 관점을 동시에 하나로 통합"한 것입니다. 이 부분이 세계 이후에 예수님이 필사자를 위해 보여주신 실천적 삶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진리의 길이며, 하느님이 만드신 구원의 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주권 획득과 별개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증여 목적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란시아 증여라는 체험에 들어가기 전에, 인간의 모범으로 살면 안 된다는, 거의 명령과 다름없는 조언을 받고 유란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완벽하게 완성하셨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아마도 예수님이 주권을 획득하고 나서, 스스로 선택한 우주 아버지의 뜻, 즉 신의 일곱단계 관점을 계시하신 일환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의 삶은 그 당시나, 혹은 먼 미래의 사람들에게나, 어떤 모범으로 되면 안된다는 조언이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삶을 모범으로 삼고 이를 따르려는 것은 예수님이 남기신 진리를 오히려 배척하는 것과 같다는 말과 같습니다.

“네가 증여될 그 세계에서 네가 수행할 모든 것에서, 모든 우주에 대한 교육과 계몽을 위해 일생을 산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명심하라. 네가 유란시아 육신의 일생을 증여하지만, 너의 통치 영역에 속하는, 이미 형성되었거나 현재 형성 중이거나 앞으로 형성될 모든 거주 세계에서 이제까지 살았거나, 현재 존재하거나, 앞으로 살아갈 모든 인간과 초인간 존재에게 영적 감화를 주는 그러한 일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필사 육신의 너의 지구 일생은, 땅에서 머무는 그 시대에 유란시아 필사자나 또는 다른 세계에 있는 인간 존재들의 어떤 후대 자손을 위한 모범을 세우도록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다가오는 시대의 모든 세대에 두루, 모든 네바돈 생명체에게 영감이 되도록 너의 육신 일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120:2.7]

사람을 위한 모범적인 삶이 아니라, 아직 창조되지 않은 행성까지 포함하여, 지역 우주의 현재와 미래의 모든 존재에게 "영감을 주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모범이 되는 삶"이 아니라, "영감을 주는 삶"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당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의 험난한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찾고, 무엇을 성취해야할 지를 진지하게 분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예수님의 삶을 따라한다고해서 달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 있던지 오히려 일상의 삶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면서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펼치신 그러한 진리를 속속들이 실천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굳게 믿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역우주의 미래의 모든 존재에게 실질적 영감을 주는 그의 삶을, "원수를 사랑하고 악을 용서하며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진 사랑과 헌신"이라고 여기는 것은, 인간의 크나큰 착각이겠지요. 예수님의 생각과 판단과 결단과 행동은, 항상 우주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진리를 온 우주에 계시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낮은 인간의 삶이 우주 아버지의 뜻으로 인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에게는 물론 모든 초인간 존재에게도 영감을 주고 새롭게 해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일상에서의 최극의 투쟁으로 완전해지는 기법을 성취해야만 하는, 그 영원한 세상으로의 구원의 길을 보여주었지요.

120편이나 119편의 글을 함께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면, 40일 고립 시기에 가브리엘이 전한 우주 최극 주권의 완성과, 세례 이후의 예수님의 삶은 별개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증여의 완성은 세례를 받기까지의 필사자로서의 깨달음의 체험과 우주 아버지를 드러내는 삶의 태도에서 이미 완성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성장이나 로마를 여행한 부분을 읽어보면, 더욱 확실하게 이해됩니다.

“육신으로의 짧은 일생동안, 하느님을-아는 인간에 의해, 필사자 실재의 짧은 생애동안에 달성될 수 있는 초월 가능성을 내 보이고, 사람에 대하여 그리고 곡절 많은 행성 일생에 대하여, 새롭고도 빛나는 해석을 네바돈 전체 해 주어라. 필사자의 몸을 입고 그 시대와 세대의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전 우주에 너의 광대한 창조체들의 일상사에서의 최극 투쟁에서 완전해진 기법의 이상을 그렇게 보여주는 것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사람을 찾아 발견하심과 사람이 하느님을 구하며 그를 발견하게 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행하여 상호적 만족이 되게 하는 것과 한 번의 짧은 육신 속에서의 일생 동안에 그것을 하는 것이다."[120:2.8]

사도들과 함께 지내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의 모든 것이, 유란시아를 주목하던 모든 천상의 존재들에게 우주 아버지를 계시하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필사자들이 진리를 깨닫고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길을 열어주면서, 인간보다 훨씬 높은 우주 존재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생생하게 깨닫도록 영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합니다.

세례 이후의 삶은, '나처럼 완전 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일상사에서의 최극 투쟁으로 완전해지는 기법'이 어떤 것인지, 그 지고한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었고, 이런 진리를 받아들여 실천한다면, 가장 낮은 필사자조차도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선포하신 것이지요. 예수님의 삶은 그 자체로서 '완전해지려는 인간의 가장 높은 이상'을 필사자에게 보여주신 것이었지요. 그 지고한 이상이 지금 우리에게, 진리의 영으로 부어지고 있습니다.

 
최경곤 16-06-05
 
소개하신 글을 다시 읽어보니 예수님의 공생애가 조금 이해가 갑니다. 핵심을 요약헤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내용이 예수님의 대속 교리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상당 기간, 예수님의 대속 교리와 그 구원의 신앙을 내세우면서, '전통'이라는 권위에, 진리를 지킨다는 사명감에 스스로 함정을 파고 있을 것입니다.

책에서 밝히고 있는 예수님의 복음은 성경으로 가르치는 복음과 다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우주 아버지의 사랑과 사람의 형제신분을 계시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피조물인 인간을 서슴없이 형제라고 부르며 그것을 실제로 우리에게 보이신 삶을 사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성경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웃을 형제처럼 사랑하라는 것을 가장 크게 강조하셨는데도, 사람들은 지금도 아버지의 사랑과 형제정신보다는, 그러한 예수님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는 죄마저도, 예수님이 전부 이해하며 떠 맡았다고 믿으려고 합니다.

유란시아 책의 예수님의 공생애가, 언젠가는 모든 교인들에게 전달되고 진리로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사트바 16-06-08
 
예수님의 일생과 가르침은 유란시아 책의 백미입니다. 인연으로 본다면, 유란시아는 일천만 세계에서 선택받은 행성이지요. 그런 특별한 인연과 의미를 기독교에서 채어가서 독점권을 주장하는 바람에, 다른 종교는 이름조차 함부로 부를 수 없게 되었었지요.

아마 유란시아 책이 나오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참된 복음은 영원히 사장될 운명이 되었을 겁니다. 세속의 일이나, 진리의 세계나, 값진 보석을 자신의 것으로 소중하게 여면서 지족의 기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괴로움의 씨앗이 되는 것이지요. 

진리는 가슴에 가두어둘 수 없다는 가르침이 문득 생각 나네요. 예수님은 진리의 화신입니다. 주권을 획득했다고 해서, 조용히 유란시아에서 철수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주를 움직이는 힘찬 역동성이 진리에서 유래되었으니, 사람을 사랑하고 참됨, 아름다움 그리고 선이 쏟아져 나오는 진리의 삶을 억누를 수는 없었으리라고 상상해 봅니다.

우주 아버지를 찾는 예수님의 자세에서, 사심 없는 사랑, 참된 형제정신 그리고 경건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우주 아버지의 자녀라는 진리가 종교를 떠나서 모든 인류에게 참된 복음이 되는 날이 오겠지요.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님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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