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영적 성장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강조되고 있다. 아무리 진리를 깨닫고 우주 통찰력을 깨우쳐도 기도는 여전히 필요하다. 기도는 원시인이 어떤 초월적 존재로 하느님을 떠 올릴 수 있었던 시절부터 인간의 의식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기도의 동기나 내용은 시대마다 인종마다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기도의 행위는 인류 진화와 당연히 동반되어야만 하는 삶의 한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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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체적 기도는 실체 달성을 한다. 심지어는 공기 기류가 상승하고 있을지라도 어떤 새든지 날개를 활짝 펴지 않고는 솟구쳐 오를 수 없다. 기도는 사람을 높이 올리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우주의 상승하는 영적 기류의 활용함으로써 진보해 나아가는 하나의 기법이기 때문이다. |
행성 진화의 마지막 단계, 곧 지상 낙원이라고 불릴만한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책에서는 빛과 생명의 시대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이루어가는 주인공은 당연히 우리 인간들이다. 물론 행성에서 사명 활동하는 수많은 천상의 존재들이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성취와 진화를 돕고 있겠지만, 빛과 생명의 시대는 인간의 물리적, 마음적, 영적 성장으로 그 문이 열리고 진화 단계가 널리 인정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하는 행성 안에서 살아가는 인류가, 기도에서도 무언가 달라져야만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세월이 아무리 변하건, 기도가 인간의 근원적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원시 시대나 빛과 생명의 시대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의 육체적, 마음적, 영적 성장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원시인과 현대인은 인간 의식에서 무엇보다도 기도의 내용이 될 만한 동기에서 무엇이 다를까? 이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원시인의 특징이라면 아는 것이 지극히 한정되었기 때문에, 판단이 비논리적이고 야만스럽고 하느님에 대한 소망도. 요즘 말하면 물불 안거리고 기적만을 바라는 일부 무속인들의 수준과 같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실체를 향하여 내미는 청원과 도움의 손길이라는 본질에서 본다면, 비논리적이고 무지막지하고 염치없이 기적을 바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만약 기도에서 그러한 비현실적인 요소가 빠진다면, 오히려 기도가 아니라 초월자와 벌리는 지적 유희라고 불릴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는 원시인과 현대인의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도에는 모두 다소간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차이는, 결국 기도의 구체적 내용일 것이다. 야만 사회와 문명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떤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일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뭔가 얻으려 기도한다고 생각하기 쉽고, 원시인이나 현대인이나 이 점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기도의 탄생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기도가 처음 탄생되었을 때부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보호하고 지켜야 대상을 위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초인간 존재에게 바치는 기도의 본질은, 대부분 자녀의 건강, 성공 혹은 가족이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원시 시대부터 사욕이 아닌, 객관적인 실체를 위해 기도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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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요 부분이 기도인 종교 그리고 그 매개자들은,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 집단적인 동의를 얻은 그러한 가치들과만 결합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시인이 보다 낮은 차원의 자기 감정들을 만족시키거나 순전히 이기적인 야망을 달성하려고 시도할 때, 그는 종교의 위로와 기도의 협력을 잃어버린다. 만약에 그 개인이 반(反) 사회적인 어떤 것을 이룩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비종교적인 마술의 협력을 추구하고 요술쟁이들에게 의지하고 그리하여 기도의 도움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는 매우 옛날부터 사회적인 진화와 도덕적인 진보 그리고 영적인 달성을 강력하게 증진시키는 것이 되었다. |
91편의 '기도의 진화" 글은 기도에 관한 아주 많은 것을 우리에게 계시하는 글이다. 방대한 책에 비하면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이지만, 너무나 심오하고 의미심장한 내용들이 가득치 있어서, 하나의 문단을 가지고도 웬만한 지혜의 책을 펴낼 수 있을 정도이다. 위 문장에서 보듯이, 원시인들조차도, 사회적 혹은 집단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가치와 결합 되었을 때, 그것이 기도로서 강격한 도구가 되었다. 가치와 결합되지 않은 반사회적, 곧 이기적인 기도는 효력도 없고 종교적 위로도 된 적이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하느님을 배척하고 마술과 요술의 신비를 교묘하게 악용하는 흑마술 백마술로 빠졌었다. 그러한 기도는 일시적인 위로를 얻을 수는 있지만, 열매를 얻을 수는 없다.
기도가 개개인에게 집단에게 사회에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기 위해서는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기도는 본질이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흔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정직한 사람들은 과학적 의식에서 나오는 의구심부터 버려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로 해석되는 과학적 세계와. 기도가 이루어지는 세계는 다르다. 초월 차원과 과학적 차원을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조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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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효능에 관하여, 신성한 근원들로부터의 도움과 인도를 추구하려고 하는 항상 존재하는 충동과 과학적인 의구심을 조화시키는 일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행복과 개별적인 자아-조정과 사회적인 조화와 도덕적인 진보 그리고 영적인 달성을 위하여 신앙으로 하는 진지한 기도가 강력한 힘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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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들조차도 가치를 위해서 기도를 시작했다고 암시하는 91편의 글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과연 현대인의 기도 의식은 문명에 걸맞게 그처럼 높은 가치를 바탕으로 시작되고 있을까.
지금도 하느님의 응답이 없다는 생각에서, 하느님의 기적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실제적으로는 백마술 흑마술의 경계를 왔다갔다 기웃거리는 사람이 제법 많을 것이다. 그러한 어리석은 행동에서 벗어나, 결국에는 기도가 모두 이루어지는, 그러한 기도를 해야만 한다.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우왕좌왕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우왕좌왕할 의식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가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좀 무지막지한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아마도 기도를 순전히 사적인 욕심으로 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가치나 영적 이상을 얘기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아시고 그렇게 무지막지하고 억지스러운 비유를 드신 것으로 보인다. 144편의 대부분이 기도에 관한 글이다.
| 144:2.3 |
“기도는 혼의 호흡이며, 아버지의 뜻을 확실하게 하려는 너희의 시도에서 끈질기게 계속 너희를 이끌어야만 한다. 만약에 너희 중에 누가 이웃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친구여, 나의 어떤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으니 빵 세 덩어리를 내게 빌려 달라.'고 했는데; 그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과 내가 잠자리에 들었으니 일어나 네게 빵을 줄 수가 없다.'고 하였다면, 너희는 끈질기게 계속 너희 친구가 배가 고프다는 것과 네가 그에게 제공할 아무 음식도 없다는 것을 설명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는데, 비록 그가 너희 친구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너희에게 빵을 주지는 않을지라도 끈질지게 조르는 것 때문에 일어나 필요한대로 너희에게 빵을 줄 것이다. 만약에 그처럼 너희의 끈질긴 계속이 필사 사람으로부터도 특혜를 얻을 수가 있다면, 영 안에서 행하는 너희의 끈질긴 계속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기꺼이 내미는 손들로부터 너희를 위한 생명의 빵을 얼마나 더 많이 얻을 수 있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다시 말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요; 찾아나서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이처럼 구하는 자는 모두 받는다; 찾아나서는 그는 발견한다; 그리고 구원의 문을 두드리는 그에게는 문이 열릴 것이다. |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점은, 개인성과 관련된 개인의 소망, 도전, 가치. 사랑과 연관되면서 쉬지 않고 반복되는 이 책의 중요한 주제중의 하나이다.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 무분별한 기도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기도는 원시 시대나 현대인이나, 가치를 위해서 시작되어야하고 반드시 사회나 집단의 진화와 동조를 이룰 수 있어야만 실질적으로 힘을 얻고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질서에도 맞지않고 사회나 집단의 발전을 저해하거나 오히려 역행시킬 수도 있는, 그러한 사적인 욕심을 이루려고 기도에 나선다면, 하느님을 찾을 것이 아니라 무속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원시시대와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이지만, 현대 문명의 맨 끝에서 이 책을 보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조화와 질서 안에서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성취하려는 기도는 성장의 필수 요소이다. 소망의 내용에서는 전혀 다르겠지만, 흔들리지 않는 신앙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찾는다면 반드시 발견하고, 두드리면 반드시 열린다는 예수님의 진리는, 현대인을 위해 새롭게 이해되고 실천되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기도를 할 수 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