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탄생   16-08-07
길손   520
 

유란시아 책에서, 8월은 예수님이 유란시아에 탄생한 달이어서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탄생일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서, 널리 알려진 예수님의 탄생일과 다르다고 해서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도 몰랐던 예수님의 정체성이 새롭고도 경이롭게 계시되었기 때문에, 새롭게 계시되고 있는 예수님의 실제 탄생일은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공언하는 기독교에서 본다면, 자신들이 유일한 구세주로 여기고 숭배하던 절대적 신앙에 자칫 흠집이라도 날까 염려하면, 탄생일이 다르다는 사실만 눈에 보이고, 그래서 무조건 배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탄생일에 대한 작은 심리적 혹은 영적 불편함이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 특히 예수님을 구세주로 신봉하는 신앙심 깊은 신자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죄를 대속하여 인간을 영원히 구원해주시는 죄에서의 해방자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을 잘못 해석하여 예수님 외에는 결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고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나를 통하지 않고는 그 어떤 다른 길이 없다"고 분명히 공언하셨고 " 너희의 죄를 위하여 흘리는 피"라고 하시면서 십자가형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되면, 얼마나 엄청나게 다른지 가슴에 격랑처럼 안타까움과 탄식과 감동이 밀려듭니다. 유란시아 독자라면 누구나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너무 많다는 말까지 할 정도 입니다. 지금도 매년 거의 7천명의 신학생들이 졸업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전부 목사는 아니겠지만 예수님을 깊이 연구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잃거나 마음이 변하는 일이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의 지식과 체험이 더해지면서 이분들의 예수님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은 점점 더 깊이를 더해가고 굳건한 신앙이 됩니다.

그러나 유란시아 책의 지적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거의 대부분의 신앙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관이나, 예수님에 대한 모든 복음이 예수님이 일생을 바치면서 인류에게 남겼던 천국 복음을 제대로 간직한 사람도 시대도 교회도 집단이 없었다는 점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해왔고, 지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믿는 예수님의 진리는 천국에 대한 복음이 아니라, 예수님에 관한 복음이거나 예수에 관한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왜 인간의 죄를 대신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려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수많은 세월동안 그의 정체성과 절대성을 입증하면서 신앙을 단단한 토대 위에 마련하였지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의 신성과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전하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가장 신성하고 고귀한 사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라는 점에서 실제로 예수님이 그토록 외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증명하려고 설명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자신을 내 세운적도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잘 아는 수많은 종교인들이 예수님의 탄생일을 새로운 의미와 시각으로 받아들이면서, 오랫동안 쌓아온 신앙을 새롭게 변모시킬 수만 있다면, 예수님의 탄생일을 계기로 참된 신앙인으로 돌아설 수 있을 것입니다.

196 :1.5 겉으로 나타난 육신으로 예수의 일생을 모방하는 것이 왕국을 믿는 자들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가 하느님을 신뢰하였던 것처럼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가 사람들을 믿었던 것처럼 사람들을 믿는 것; 바로 그러한 그의 신앙을 나누어야한다. 예수하느님의 아버지신분에 대하여나 사람들의 형제신분에 대하여 논쟁한 적이 없었다; 그는 전자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예증이었고 후자에 대해서는 심오한 실증이었다.

우리의 신앙을 예수님에 대한 신앙에서 예수님의 신앙으로 바꾸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만 먹는다고 그렇게 변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유란시아 책을 읽는 분들 중에는 우주에 대한 진리에 심리적으로 감동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그러나 우주 진리에 대한 숙연하고 진지한 자세에서, 영적으로 감응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책에서 밝히는 우주적 구조와 여러 사실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그 배경에 담긴 진실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식이나 결심으로 그러한 신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지녔던 신앙을 가지려면,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알고 믿고 따라야만 합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적 교리에 의해서, 하느님 존재와 이름과 위력만 알고 믿는 것이지, 정말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예수님을 아는 모든 종교와 종교인들이, 이제 새롭게 탄생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6 :1.2

19 세기의 신학적 전통과 종교적 독단 속에 예수를 묻어놓은 무덤으로부터, 인간 예수에 대한 상징적인 부활을 증언할 시기가 무르익었다. 나사렛 예수가 영화롭게된 그리스도라는 눈부신 개념으로 더 이상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이 계시를 통하여, 사람의 아들이 전통적 신학의 무덤으로부터 회복되어야하고 그리고 그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교회와 다른 모든 종교에게 살아 계신 예수로서 제시된다면 얼마나 초월적인 봉사일 것인가! 그리스도 신자 교인들의 형제관계는, 주(主)를 “뒤 따르는 것”이 가능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과 사람의 이타적 봉사에 몸을 바친 종교적 헌신이라는 그의 실제 삶의 실연 안에서 그를 따라 신앙에서의 그리고 삶의 실천에서 주저없이 그러한 조정을 이루게 될 것이 분명하다. 공언된 그리스도교인들이 사회적인 체면과 경제에서의 이기적 조절-불량이라는 자아-충족적이고 헌신하지 않은 동료관계가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만약 갈릴리예수가 개인적인 종교적 삶의 이상(理想)으로써 필사 사람들의 마음과 혼 속에 본래의 자리를 잡았을 때, 제도화된 그리스도교는 전통적 성직 권위의 위험성, 아니 심지어 전복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두려워 하는가? 만약 예수의 살아있는 종교가 예수에 대한 신학적인 종교를 갑자기 대체한다면, 그리스도교 문명에서의 사회적인 재조정, 경제적 변환, 도덕적 원기의 회복, 그리고 종교적 교정은 정말로 극적이고도 혁명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살아있을 동안 예수님이 지니셨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관심을 가지 기회가 없었지요. 첫째는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고, 예수님이 펼치신 복음을 예수님에 대한 복음으로 바꾸어 놓은 사도들의 잘못도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에 대한 진리를 남기셨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서 진리라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감각을 스스로 발달시키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196 :0.1 예수하느님에 대하여 고귀하고 진심으로의 신앙을 향유(享有)하였다. 그는 필사 실재의 일반적인 부침(浮沈)을 체험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확실한 보호와 인도하심에 대해 신앙적으로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신앙은 신성한 현존, 내재(內在)하는 조절자의 활동으로 태어난 통찰력의 결과였다. 그의 신앙은 전통적인 것 또는 단지 지적인 것도 아니었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적 그리고 순전히 영적인 것이었다.

예수님의 신앙으로 회복하려면, 예수님이 부어주신 진리의 영이 활발하게 일상의 삶에서 나타날 수 있도록 가슴을 열어야만 합니다. 진리는 말 그대로 참된 것이지, 그것으로 행복한 세상과 마음의 평온을 얻는 도구로 사용하거나, 어떤 지적 만족이나 조화에 머물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참된 것을 찾아내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바꾸려는 것은 진리의 영과 동행하는 삶을 활발하게 살려는 것입니다. 

고귀하고 진실한 신앙에서는, 서로 안다고 다투려는 지적인 행위가 없고, 집단적이거나 심리적으로 감동이 휘몰아치는 그런 격동도 없습니다. 하느님을 알아야만 시작될 수 있겠지만, 아는 것만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최경곤 16-08-08
 
시간이 지날수록 계시가 확산되는 것은 틀림없고. 예수님의 신앙으로 새롭게 탄생되는 것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성취될 것으로 믿습니다. 다만 그러한 과정에서,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진리에 냉담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종교를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러한 반응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영적 수용능력에 관한 일이라고 합니다. 모든 일에서 최선을 다 해야겠지만, 결과는 하느님의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빛과 생명의 시대도 각자의 노력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리라 믿습니다.

미래의 인류를 이끈다는 계시의 역할을 잠시 생각해보면, 갑작스럽게 영적 각성이나 부흥 운동이 열광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겉보기에 그런 열광이 갑자기 일어난다면 기존의 진화 종교에서 보이는 왜곡된 감상은 아닐지 스스로 점검해 봐야겠지요.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일생을 새로운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꼴라쥬 16-08-09
 
예수님이 하느님의 독생자 아들이라는 기독교의 교리는 하느님을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신화적인 상징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인간의 원죄를 없애려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는 얘기도 믿음과 복종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기독교를 달갑게 여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창조주이시고, 하느님을 계시하기 위하여 이 땅에서 마지막 증여를 위해 탄생하셨다는 유란시아 책의 이야기는 너무나 달라서, 성경을 믿는 분들이 변화될 수 있을지는 좀 의문이 듭니다. 책을 읽어도 그동안 몸에 배인 복종심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사실로 지식과 감동만 깊어지고 예수님 삶을 따르려고 하기가 쉽습니다. 교회에 안 다니는 분들이 더 빨리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토파즈 16-08-10
 
앞으로 젊은이들이 직업적으로 신학대학에 매력을 못느끼는 시대가 와야 해요. 기독교가 깨어나려면 최소 백년 이상 걸려요.
앙크님의 만화 2탄 미가엘이 증여된 시기 
원시인의 기도와 현대인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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