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찾고 그를 알아가는 것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삶이라는 말이 책에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이 존재하시고 우주를 만드시고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굳이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도, 우리가 믿을 수 있고 확신할 수 있는 증거나 논리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실성은, 얼마든지 인간 지혜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모든 사람을 납득시킬 수도 있습니다. 조금만 주변을 둘러봐도 인간이 이룩한 놀라운 통찰력과 지혜는 수많은 철학자와 신학자와 사상가들의 필생의 연구를 통하여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그러한 책과 가르침들이 손만 뻗으면 얼마든지 닿을 수 있습니다. 유투브에도 넘칩니다.
이렇게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나 우주의 질서를 깨닫고, 하느님이 다스리는 섭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유란시아 책이 계시로 내려오지 않아도 우리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깨달음이나 믿음과 신념은 마음의 자세일 뿐, 하느님의 진리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반드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순수한 믿음을 바탕으로 시작되지만, 계시는 그러한 진리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인간을 위하여 내려준 것입니다.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지 않는다면, 계시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만약에 계시가 주어진 이유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필연적인 조치였다면, 계시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우리는 천상의 존재들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영적으로 추락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지식으로 우리의 오만을 높인다는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지식도 깨달음도 진리도 계시도 모두, 잘못된 영적 반응만을 일으킬 것입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참된 사랑과 진리에 대한 갈증으로 매일의 삶이 바뀔 수 있을 때, 계시는 우리에게 영적 결실을 거두게 이끌어준 신성한 복음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