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가 게시판에 소개되었네요.
음악을 들으면서 노예로 살아가야 했던 그들의 슬픔과 처지를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런 슬프고 안타까운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요. 마찬가지로 악을 저지르는 현장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도 없고, 아름답고 찬란한 것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도 없는 것이지요.
느낌에서만 본다면 사람은 누구나 슬픔과 기쁨을 깊이 공감하는 가족과 같습니다. 그런 감정이 매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마다 그것이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자신에게 필요한 참되고 아름답고 선한 것을 가득 채우려는 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생명채의 특징이고 더구나 그것을 의지로서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만이 지니는 고귀한 존엄성이라고 하지요. 그런 의지의 존엄성이 나타나자마자, 하느님의 단편인 생각조절자가 우리 마음 안에 깃드는 것이지요.
사람은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단지 원하기만 한다고 해서, 아무 노력도 없이, 저절로 성취될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뭐든지 미리미리 챙겨주던 간난아이 시절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움직여야만 결과적으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노력을 했지만 기쁨이 성취되지 않았을 때, 좌절과 실망이 찾아오고 모든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고통이나 슬픔을 이겨내지 못했거나, 이겨낼 자신이 없다고 느꼈을 때, 사람들은 그런 현실을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탓으로 돌리면서, 그 모든 것을 다스리는 초월적 대상에게 호소하고 의탁하게 되는 것이지요.
자신의 의지로 도전했으나 능력이 안 되어서 이루지 못할 때. 도움을 받으려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도움이 아니라 그냥 대신 해주기는 기다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만이 가진 자유 의지의 존엄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지요. 도움을 받아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데. 이를 거절하는 이유에는, 주어진 상황에만 반응하는 동물적 본능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스스로를 믿는 자만심이 있지요.
이 자만심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선입관과 왜곡으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도 마땅히 도움을 받고 슬픔에서 해방되어야만 하겠지만,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이웃과 교류하지 못하고, 미래를 대비하지 못했던, 민족적 자만심과 어리식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했지요. 그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것마저도 선입견과 자기주장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현실이지요.
메시아를 기다리는 당시 유대인의 슬픔과 고통도 공감해야겠지만,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그들의 그릇된 자부심과 편협함이 어떠했는지도 함께 생각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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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왔을 무렵에,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운명에 대해 확고한 개념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과 이방세계 사이에 견고한 벽을 쌓아 놓고 있었으며; 이방인들의 방식은 무엇이던지 심하게 경멸하였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율법을 경배하였으며 자신들의 혈통에 대한 그릇된 자부심에 근거하여 스스로 의롭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약속된 메시아에 대하여 이미 여러 선입견들을 만들어 놓고 있었으며; 이러한 기대들 대부분은 그들의 나라와 민족 역사의 한 부분으로 오는 메시아를 상상하였다. 당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유대 신학은 돌이킬 수 없도록 정착되어지고 언제까지나 고정된 상태였다. |
유대인들의 잘못된 자부심이 예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십자가형으로 진리를 부정하면서 인류의 영적 진화를 엄청나게 저지시킨 것입니다. 유대인의 자만심이 또 다른 민족적 자만심이라는 악과 만나서,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이 벌어졌던 역사가 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악과 악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생생하게 깨우쳐줍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런 진실을 기법 개발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선입견과 선입견, 편견과 편견이 만나고 충돌하면, 결국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참된 진실도 진리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자기주장과 자기 설명만 있습니다.
스스로 쌓아놓은 선입견은 혼자의 힘으로 허물 수 없습니다. 반드시 참된 진리의 빛이 있어야하고, 그 빛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용기가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유란시아 계시는 새로운 참된 진리의 빛으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용기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