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올바른 경배란   15-12-20
불새   736
 

모습은 각양각색이겠지만, 마음속에서 기도나 경배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 그것이 기도나 경배라는 것을 모를 뿐, 원시시대부터 첨단과학 시대까지, 경배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마음에 경배의 보조 영 회로가 구성되는 것을 보면,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최초의 특징이라서 그런지, 원시 시대의 경배는 거의 동물적 본능에 가깝다. 책에서 설명하는 이런 원시인들의 경배 형태가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서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85편 경배의 기원을 읽어 보면, 돌과 언덕을 경배할 수밖에 원시인들의 무지와 공포심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잠재의식에 그대로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위기상황이나 혹은 동물적 본능에서 나오는 경배는 지금도 여전히 초자연적인 현상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85:0.4 필사 사람은 한 때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지구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경배하였다. 또한 그는 하늘 위에 그리고 땅의 표면 밑에 있을 것으로 상상되는 모든 것들도 경배하였다. 원시인은 힘이 보이는 모든 것들을 두려워하였으며;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자연 현상들을 경배하였다. 폭풍, 홍수, 지진, 산사태, 화산 폭발, 불, 열, 추위 등과 같은 강력한 자연적 힘들에 대한 관찰은 사람의 확대되는 마음에 엄청나게 인상(印象)을 주었다. 아직도 여전히 삶의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하느님의 활동” 그리고 “신비한 천의(天意)의 섭리들”로 풀이되고 있다.
85:7.3 경배에 대한 욕망은 지혜─묵상으로의 그리고 체험으로의 사고─에 의해서 충고를 받고 지시를 받으며 그 후에는 실제적인 종교 현상으로 발전된다. 지혜의 영인 일곱 번째 보조 영이 효과적인 봉사사명을 성취하면, 사람은 경배 과정 속에서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자연적인 대상물로부터 멀어지는 동시에 자연의 하느님께로 그리고 모든 자연 세계의 영원한 창조주께로 돌아서기 시작한다.

사실, 현대인이 현상에서 벗어나 그러한 초월적 현상의 원인자로서 조물주나 혹은 근원적 실체를 경배의 대상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냉정하게 따져서, 초월적 차원을 경배하는 수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엄숙한 계율이나 혹은 마음 수행을 경배 차원으로 상승시켰던 중세기의 인본적 종교 진리나, 최근에 유행하는 명상들이 모두 초자연적 현상이나 혹은 초월 현상을 벗어난 근원에 대한 접근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여러 종교가 저마다 깊은 진리를 바탕으로, 시대마다, 종족마다 새 종파가 계속 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근본 의식을 차지하는, 경배 대상의 개념에서 본다면 아직도 진화 형태의 초월적 대상에 불과하다. 그것이 자연적 사물에서, 초자연적 사물과 현상으로 진화했고, 그리고는 다시 지식의 확대에 따라서, 초자연적 근원, 곧 '자연세계의 영원한 창조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런 깨달음은 영적 차원에서 우러나오는 '우주의 영원한 아버지'에 대한 경배에 접근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각자의 신앙의 깊이나 방향은 누구도 간섭하거나 평가할 수 없는 하느님과의 개인적 관계이다. 그러나 계시의 목적은, 각자의 영적 각성을 재촉하고 개인성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우주 마음과 우주 에너지와 우주 실체를 하나로 이해하고 체험할 진리를 전해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주 아버지를 강조하는 계시를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참된 경배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체험이다. 유란시아 책을 모르는 분은 지금도 마음을 다스리고 정화시키는 수련을 경배로 대체시키면서, 그러한 깨달음 안에 안주하고 있다.

101:8.1 믿음은 그것이 일생에 동기를 부여하고 삶의 양식을 구체화할 때 신앙의 차원을 달성해 왔다. 가르침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믿음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신앙은 확신도 아니고 신념도 아니다. 마음의 상태는 그것이 실제적으로 삶의 양식을 지배할 때에만 신앙 차원을 달성한다. 신앙은 진정한 개인적 종교 체험의 살아있는 속성이다. 사람은 참된 것, 진리(眞)를 믿고 아름다움, 미(美)를 동경하며 선한 것, 선(善)을 숭상할 수 있지만, 그것들을 경배하지는 않는다; 구원하는 신앙에서의 그러한 태도는, 이들 개인화되고 그리고 더욱 더 무한하게 되는 모든 것이신, 오직 홀로이신 하느님에게 중심을 두고 있다.

영적 진리에 대한 염원이나 신앙이 없이, 단순한 초월적 실체에 대한 우주적 확장이나 지적 확신이나 초월적 믿음은 체험으로 이르는 실천적 에너지를 연결시키지 못한다.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하거나 게으름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이기심에 시달리거나, 자기만족에 머무르고 있다면, 하느님을 단지 초자연적 근원자로 경배하는, 그러한 진화적 한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다 설명되고 완료된 지금, 아버지 관념은 여전히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가장 높은 개념이다"라는 말은, 경배의 중심에 아버지 관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경배가 신성하게 창조적이라는 예수님의 진리는 신성과 창조성이 하느님의 본성이라는 절대적 진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의 신성과 본성과 사랑은 단지 생각이나 지능이나 마음이 아니라, 체험적 결과로 확인되고 점점 더 실체로서 인식된다는 진리가 우리 곁에 있다.



(여량님의 경배와 미래의 삶을 읽고 단상을 적어본 글입니다.)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1-02 독자 게시판에서 복사 된 것입니다. ]
 
네오 15-12-22
 
글 5편에 참된 경배에 대한 자세한 계시가 있습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개인적 체험이 진리의 핵심이지요. 경배가 인류 진화에 따라 자연적으로 나타나고, 의식의 성장에 따라서 점점 변화되지만, 의지로 선택하는, 의지적 행위가 경배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절대자는 모든 만물의 시작이자 운명이라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만, 절대자를 공경할 수 있어도, 경배할 수는 없다는 글이 있습니다. 그처럼 무소불위의 초월적 대상에게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어떤 경외감이나 공경을 위한 심오한 반응은 엄밀하게 말하면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경배는 아니겠지요.

"우리는 우주 아버지, 영원 아들, 그리고 무한 영을 개인들이라고 알고 있지만, 나는 신(神) 절대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나는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고 경배한다; 나는 신(神) 절대자를 존경하고 공경한다." [10:8.5]

경배가 결국에는 사랑이 바탕이 되는 체험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하세월 15-12-23
 
연말이 되면 평소와는 달리 경건한 마음을 가지는데, 때마침 경배를 생각해볼 글이 있네요.

평범한 말 같지만, "필사 사람은 한 때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지구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경배하였다"는 얘기가 가볍게 들리지가 않습니다.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동물도 본능적으로 자신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공감이 갑니다.

생명체는 학습 능력도 없는 직관의 보조 영으로 살아가다가, 진화를 통해 납득의 보조 영이 작용하며 비로소 학습능력으로 주변 상황을 파악해 가면서 생명을 유지한다고 하지요.

논리적 비약이기는 합니다만, 사람으로 친다면 처음에는 나만 존재한다고 알고 있다가, 성장하면서 체험을 통해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깨우치고 뭔가 따라야할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겠지요, 원시인도 처음에는 단순히 맹수를 두려워하고 부러워하다가, 마침내 경배의 보조 영까지 진화한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인간과 동물이 구분되었다고 하지요.

인간이 한때, "지구 위의 모든 것을 경배"했다는 것은, 두려운 모든 대상을 경배했었고, 그것은 대부분 살기 위한 것이었겠지요.

지금도 경배가 신성한 실체를 향하는 겸손한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못하고, 여전히 두려움이나 혹은 자기 존재를 계속하고 싶어서 하느님에게 굴종하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나 자신이 그런 게 아닐까 싶어서, 책의 말이 가볍게 보이지가 않네요.

아직도 자신의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서, 하느님을 경배하거나 의탁한다면 그것은 한때 있었던 "지구 위의 모든 것을 경배"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겠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좀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존재로 바뀌었을 뿐, 본질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영원한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은, 두려움이나 존재를 이어갈 목적에서가 아니라, 순수한 근원 의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아 집착이나 자기중심을 벗어나면, 순수 근원 의식이 참된 경배로 이어질 수 있겠지요.

욕심 없이, 오로지 근원을 찾는 순수 의식이 쉽지는 않지만, 노력하다 보면 언잰가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디오니스 15-12-31
 
종교마다 하나의 격식으로 경배가 있습니다만, 책에서 정의하는 경배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같습니다.

"가르침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믿음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신앙은 확신도 아니고 신념도 아니다....참된 것, 진리(眞)를 믿고 아름다움, 미(美)를 동경하며 선한 것, 선(善)을 숭상할 수 있지만, 그것들을 경배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촣을 글 잘 읽었습니다.
참된 삶을 위한 작은 실천 
경배와 미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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