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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살다보면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황홀감에 싸여 세상 모든 것이 그 순간에서 영원히 정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는 않는다. 그 황홀한 순간에서 영원히 멈추고 싶으면,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고 내가 멈추는 수밖에 없는데, 감정이나 생각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으니 사라져가는 기쁨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런 아쉬움이 겹치면 응어리가 생기고, 세상이 점점 야속해지는 것이다.
반대로 너무나 고통스러워 순식간에 벗어나고 싶은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마치 시간이 정지라도 하듯 무지하게 천천히 흐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잔인하고 야속하기가 그지없다.
이렇게 시간은 기쁨이나 슬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갑고 냉담하게 흘러간다.
사람들은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가 있고 그것이 시간 속에 담겨 흐른다고 한다. 시간 속에서 만들고 있는 모든 사람의 열정과 사랑과 도전과 눈물과 환호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담아내는 것도 섭리의 하나인가? 하느님은 모든 것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그 끝을 아신다고 하는데, 그 모든 사연들을 담아서 도대체 어디로 가져가는 것이며, 그것을 가져가서 뭐에 쓴다는 것일까?
우리는 모른다. 다만 시간을 만드신 하느님만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유란시아 책에 수수께끼 같은 말이 있다.
| 4:1.2 |
사람과 관계되는 하느님에 대한 너희 개념에서, 우주의 표어가 진보인 것을 너희가 깨닫는 그 차원으로 너희는 나아갈 수 없겠는가? 긴 세월 동안 인간 종족은 그 현재 위치에 도달하기 위하여 투쟁해 왔다. 이 모든 수천 년 동안 섭리는 진보적인 진화 계획을 수행해 왔다. 실제에 있어서는 두 가지 생각들이 서로 대립되지 않으며, 오직 사람의 잘못된 개념 속에서만 그러하다. 신성한 섭리는, 현세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참된 인간적 진보에 대하여 결코 정 반대의 위치에 놓이지 않는다. 섭리는 최극 입법자의 불변하는 완전한 본성과 항상 일치한다. |
아마도 우주의 진보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궁극적인 답일 것이다. 그리고 진화의 의미는 책을 읽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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