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기도   16-01-07
코너킥   907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즐겁고 늘 생기가 넘치는 삶이 있다, 어린아이의 살이 그것이다. 어린아이의 삶은 특별히 지켜야할 의무도, 책임도 없이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되고 자랑이 된다.

어린아이가 흘리는 눈물이나 고통이나 분노는, 어른이 보기에는 심각하기는 커녕, 그것마저도 귀엽고 예쁘고 대견스러운 모습으로 보일 때가 많다.

부모나 어른들이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모든 삶은, 그것이 슬픔이나 기쁨이나 상관없이 영롱한 보석으로 보인다.  모든 것에 활발하게 반응하는 것을 생기차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런 모습에 기쁨을 얻고 무한한 사랑을 준다.

그러나 성장할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늘 생글거리며 웃는 모습이 좋아서, 모든 원하는 것을 주려고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챙겨주고 돌본다면 그것은 어린 아이를 망치는 일이다.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은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라, 일일이 받아주면 안된다. 오히려 현실을 이겨나갈 힘이 생겨나도록 지혜롭게 돌봐야한다.

모든 투정을 즉각 해결해주면, 아이 얼굴에는 늘 방들거리는 웃음이 돌겠지만, 그 어린아이는 자라면서 투정의 전문가로 성장한다. 결과적으로 부모가 주는 먹이로 살아가고, 먹이에만 반응하는 애완동물로 자라나는 것이다.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내고 기쁨을 창조하는 투쟁의 주인공이 아니라, 현실을 불평하고 거부하고 비난하는 투정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참된 부모에게는 어린애의 웃음과 눈물이 모두 당연하며, 모두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보인다. 아이와 같이 기뻐하고 슬퍼해야 하지만, 울거나 방글거리거나 모두 활기찬 모습으로 보이고, 그렇게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보람이 되고 자랑이 될 것이다.

만약에 하늘의 천사가 우리를 마치 어린아이처럼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의 슬픔과 분노와 절망과 기쁨에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실제로 그런 천사가 존재하고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지는 자명하다. 한마디로 슬픔과 기쁨 속에서도 열심히 그리고 활기차게 살기만 하면 된다. 활력을 잃지 않고 생생하게 살면, 병들지만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보람과 긍지가 될 것이다.

천사가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를 영적으로 보살피는 천사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천사가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은 육체의 활력이 아니라 마음의 활력이다. 시들하게 병든다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이 병드는 것은 슬픔이나 기쁨의 가정적 반응이 아니라, 마음에서 의욕과 생기가 자라나거나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병든 마음은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현실에 한을 품고 저주하고 복수를 생각하거나, 무기력을 감추려고 오히려 세상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부인하며 피하는 것이 병든 마음이다.

열심히 살다가 자칫 질병에 걸린다면 즉시 사랑의 손길로 보살피겠지만, 달콤한 사랑이나 위안을 맛보려고 스스로 병을 만들어내거나, 병든 마음을 고치지 않거나, 병을 반복한다면 어떤 천사도 돕지 않을 것이다. 돕는 것이 오히려 그 존재를 파괴하는 것이다.

기도는 천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손길이다. 열심히 살다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애를 만났을 때,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리석고 무지한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살아가지 않고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삶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하여 먹이만을 즐기려는 동물적 삶이다.

동물적 본능으로 살면서, 얼마나 기도를 어리석게 오용했는지, 참된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기도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제시하는 진리가 있다. 유란시아 책의 91편의 기도의 진화가 그것이다. 여기서는 동물적 기도와 인간적 기도와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밝히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깨우치도록 이끌고 있다.

91:8.5 기도는 하느님을-의식함의 자발적 표현일 수도 있고 또는 신학적 공식의 의미없는 낭독일 수도 있다. 그것은 하느님을 아는 혼(魂)의 환희에 넘치는 찬미일 수도 있고 또는 두려움에-지배당한 필사자의 노예처럼 복종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때로는 영적 간청의 감상적 표현이고 그리고 때로는 경건한 구절들의 뻔뻔스러운 소리침이다. 기도는 기쁨넘치는 찬미일 수도 있으며 용서를 위한 겸손한 탄원일 수도 있다. .
91:8.6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원하는 어린아이같은 탄원일 수도 있고, 또는 도덕적인 성장과 영적인 힘을 원하는 성숙한 애원일 수도 있다. 청원은 날마다 필요한 빵일 수도 있고, 또는 하느님을 찾아내어 그의 뜻을 행하려는 전심전력의 염원을 구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온통 이기적인 부탁일 수도 있고, 이타적인 형제신분의 실현을 향한 참되고 뛰어난 몸짓일 수도 있다..
91:8.7 기도는 복수를 위한 성난 고함 소리가 될 수 있고 자기 적을 위해 자비를 간청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하느님을 변화시키는 바램의 표현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기법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길을 잃었던 죄인이 필경 준엄하다 여겨지는 재판관 앞에서 움츠리면서 하는 비굴한 탄원일 수도 있고, 살아있는 그리고 자비로우신 하늘 아버지의 해방된 아들의 기쁨 넘치는 표현일 수도 있다.
91:8.8 현대인은 순전히 개인적인 방법으로 하느님과 일들에 관해 대화한다는 생각때문에 당혹해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규칙적인 기도를 내던져 버렸다; 그들은 오직 특별한 압력 아래에 있어야─비상시에─기도한다. 사람은 하느님과 대화하는 데에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한다, 그러나 오직 영적 어린아이만이 하느님을 설득하려 하거나 주제넘게 변화시키려고 나선다.

삶을 산다는 것은 슬픔과 고통과 기쁨과 즐거움이 항상 뒤따르게 마련이다. 태생적으로 풍족한 극소수의 사람들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애 따라서 슬픔도 맛보고, 성취의 기쁨도 맛보면서 살아간다. 평생을 근심 걱정없이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영적 불운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영적 행운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무런 의지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스스로의 의지를 포기하고 하느님께 기대어 시키는대로 살아겠다는 것도 심각한 착각이다.

하느님은 자신의 어떤 소원도 다 들어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러한 자기 최면을 굳건한 신앙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런 삶은 결국에는 실제로는 게으름과 탐욕같은 동물 본성으로 시간을 즐기는데 허송하는 삶이다.

정말로 아무 특별한 삶의 의미도 가치도 없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삶을 산다면, 본인이야 그런 삶을 살아도 나름대로 후회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하느님이 보기에 그게 보통의 생명체와 특별하게 다른 존재의 의미가 있겠는가. 수많은 동물이나 식물처럼 단지 소모품처럼 시간 속에서 잠시 나타난 생명의 소모품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기도는 적어도 "마음의 평화, 쾌활함, 침착, 용기, 자제심 그리고 공정성"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어야만 한다. 기도가 단지 기대에 멈추어서는 안될 것이다.

 
불새 16-01-07
 
연말이 되면 새해 목표를 다짐하곤 하는데, 나쁜 습관을 없애려는 것이 그 중 하나입니다. 매년 결심하다보니 이제는 저절로 외울 정도입니다. 실천도 수없이 되풀이하다보니 별로 어렵지도 않고요. 늘 실천만 반복하다가 아무 결실도 없이 끝날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도 여전히 실천하고 있지요.

[작년 / 금년 / 아마 내년에도 버려야할 나쁜 습관들-오늘도 고치고 있는 나쁜 습관들] 
▶게으름 ▶이기심 ▶자만 ▶안일함 ▶무기력 ▶거만 ▶미련함 ▶거짓말 ▶질투 ▶변명
▶비겁 ▶비굴함 ▶경거망동 ▶무분별 ▶ 잔재주 ▶얄팍함 ▶성급함 ▶고집불통 ▶편견

왜 계속 이것들을 버리는데, 끊임없이 자꾸 나타나는 것인지 짜증이 납니다. 도대체 계속 나타나는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갈등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지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 남들에 비하여 열등하다"는 뿌리 깊은 열등의식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밑바닥에 은밀하게 잠재되어 있는 이러한 열등감을 스스로 부정하려고 오히려 정반대되는 느낌을 즐기려고 강력하게 반발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나쁜 습관들이 샘솟듯 올라오는 것이지요. 저명한 과학자와 의사들이 모두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유란시아 책은 먼저, 우리 자신의 열등한 모습, 동물적 근원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고도 용기 있게 마주하라고 깨우쳐 줍니다. 그것이 진리이지요. 그 다음 그러한 동물적 본능에서 벗어날 엄청난 힘을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 그것이 진리이지요. 내재된 그 엄청난 힘을 실제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리 모든 진리를 알고 있어도 여전히 동물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 그것이 진리이지요. 그리고는 어떻게 하면 된다고 그 방법을 알려주지요. 그것이 계시입니다.

오늘도 대부분의 사람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싶어서, 자기최면에 빠지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규칙적인 기도를 내던져 버렸다."는 깨우침이 참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하네요.
사람마다 지혜가 다르니, 한방에 모든 것을 해결할 비법을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어찌되었건 나쁜 습관을 고치겠다는 기도는 반복하지 않아야 하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최경곤 16-01-07
 
91편의 글은 처음 읽을 떄부터 감명도 깊었고 놀라운 내용들이라서 특히 가슴에 와 닿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나 성당에서 하는 기도는 일상의 일을 깨닫고 다짐하는, 그런 틀에 박인 행위였지요.  그런 기도를 신학적 제도라는 공식에서 이루어지는 의미없는 낭독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하는 글을 보고, 무언가 깨닫지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오랜 습관으로 굳어진 탓에, 쉽사리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그나마 유란시아 책 덕분에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 깨닫고 목표를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곤 합니다. 금년에는 좀 더 참된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겠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사람들 
독자 게시판을 새롭게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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