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삶을 위한 작은 실천   16-01-02
길손   549
 

유란시아 책의 독자들은 이 책이 새로운 계시임을 알고 있고, 책에 담긴 진리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신성한 진리에 따라 변화된 삶을 통하여, 우리의 참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고, 이는 행복을 누리고 나아가 영원한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축복도 받게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아가려고 한걸음 한걸음 차근차근 성취하려고 애쓰고 있지요.

유란시아 책은 아무리 건성으로 읽어도, 나름대로 새로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실천하고자 결심만 하면 누구든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새롭게 탄생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참되게 살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 책도 우리가 깨어나기를 안타깝게 호소하고 있고,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참된 구원의 결실을 거두는 삶을 살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수없이 호소하셨지요.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직접 듣지 못하는 후대를 위해서, 진리의 영으로 직접적인 가르침을 대신하시겠다 공언하셨고 그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4번째 계시와 5번째 계시를 통해 이들 호소를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듣고 있습니다.

유란시아 책의 시대적 진리를 알고, 깊이 깨닫지만, 새로운 탄생이나 삶의 변화를 실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겁니다. 그것은 영적 체험이라서 인간 지식이나 느낌으로는 알 수 없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심오한 내용에 해박하고, 읽을때마다 전율의 감동을 느낀다고해도 그것이 진리의 실천이 되지는 않습니다. 생각과 의식이 바뀌어야만 삶의 태도도 바뀔 수 있고, 그래야만 세상과 우주를 다른 시각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영적 변화가 없다면, 각자가 깨닫거나 느끼는 진리는 시간 속에서 헛되이 사라질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지만, 유란시아 책에서 지적하듯이, 그것을 온전하게 실천하는 데에는 대부분 실패합니다. 책에서 그 자세한 이유를 밝혀줍니다만, 그 중에서가장 강력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설명하는 것에 자만심이 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자만심은 겉모습이 아니고, 보이지않는 근본적인 의식이기 때문에, 겉보기에 더할나위없이 겸손한 사람도 자만심에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111:6.9 사람의 필사자 본성을 에워싸고 그의 영적 온전무결성을 위태롭게 하는 모든 위험들 중에서도 자만이 가장 크다. 용기는 씩씩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중심주의는 허영이며 그리고 자멸이다. 합당한 자아-자신감은 개탄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은 동물의 왕국으로부터 그를 구별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진리의 실천과 결실에 치명적이라는 그 자만심의 희생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만심이 인간 본성이라는 선천적 한계라서,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만심을 극복할 힘은 누구에게나 있는데, 사용하지 않던지 못하던지 둘 중의 하나가 되겠지요.

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있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참고할만한 내용입니다.


이 동영상은 사회 발전과 성취를 위해 올바른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만, 유란시아 독자에게는, 선입견과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며, 얼마나 널리 퍼져있는 일반적 현상인지 살펴불 수 있습니다.

선천적 환경이나 사회적 현상 때문에 성장과정에서는 어쩔수없이 선입견과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선입견이나 편견은 각자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장하기를 거부하거나, 그것이 선입견이나 편견일 줄 알면서도 고집하며, 오히려 사실을 올바르게 바라보기를 외면한다면, 이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진리를 사실로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전히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진리의 활용이나 실천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의도적으로 진리를 배척하는 것이며 치명적인 것입니다.

진실보다는 마음이 편한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서, 잘못이 있다면 나중에 고치겠다며 뒤로 미루며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의 삶이겠지요. 유란시아 책은 이런 삶을 동물적 게으름으로 구분하면서, 그 어떤 구실도 될 수없다고 설명합니다. 유란시아 책은, 영적 결실이 없으면 그 삶은 다시 태어날 단서도 가치도 없다고 합니다.

모든 선입견과 편견은, 나 자신이 남보다 상대적으로 옳다고, 뛰어나다고, 정당하다고, 떳떳하다고, 참되다고 믿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생각이 강해서 진실이나 사실과는 상관없이,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동영상의 유머처럼 원숭이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올해는 원숭이 해입니다.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진리를 발견하고 실천하는 결실에서, 원숭이 지혜보다도 못한 지혜를 가지고, 자존심의 희생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이 어리석고, 무식하고, 불쌍하고, 거짓되고, 위선이고, 악한 마음을 숨기고 있고, 고집불통이고, 탐욕이 있고, 남을 속이며, 진리를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그것은 교묘하게 감추어진 자만심이 만들어낸 선입견과 편견입니다.

까닭 없이 진실을 왜곡하거나, 혹은 억지로 까닭을 만들어가면서 자기 생각을 강화허거나 고집하고 있다면, 금년을 계기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는 것이 바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생각조절자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것이 진정으로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이 증여하신 사랑의 힘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1-02 독자 게시판에서 복사 된 것입니다. ]
 
최경곤 16-01-04
 
선입견과 편견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어려운 과제입니다. 좋은 의미로 뒤집어 생각하면 선입견과 편견은 차별화된 개인의 생각이자 의식이기도 합니다. 가족 안에서도 차별화된 존재로 살 수 밖에 없고, 항상 다르게 존재하고 있어야하는 숙명에서, 물질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잠간 동안 차별화된 의식을 가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독자적인 의식이 물질 차원에서 한시적인 영역에 오랫동안 고착된다는 점이겠지요. 의식의 질적 성장이 있다면 고착화는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성장의 동력이 유연성인데, 유연성이 바로 고착화를 파괴하기 때문이지요. 성장이 아니라 양적 확대만 있다면, 의식의 고착화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같이 팽창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점점 더 자신을 주장하고 내세우는, 선입견과 편견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이지요.

모든 성장의 근원은 생명이고 생명의 근원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여전히 선입견과 편견이 남아 있겠지만, 사실과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는, 참된 사랑에서 비롯되고 함께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불새 16-01-07
 
하느님은 이미 우리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거의 무한의 가능성을 부여했습니다. 우리는 선의의 경쟁을 통하여 서로가 서로의 성취를 기뻐하면서 각자 지니고 있는 모든 신성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서로 독려하면서 힘을 합쳐 잠재된 능력을 다 소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무한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승자의 기쁨에 취해 현제적 성취를 자랑하고 재능을 뽐내면서 자만심의 행복에 빠져서 뒤처진 사람들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동정하곤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한 순간에 추락하는 것이고요. 

되처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러한 승자들의 성취에 상처입고 조롱에 굴복하여, 일시적 패배를 영원한 패배로 받아들이면서 절망감과 열등감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는 것이지요. 그런 몸부림이 세상에 분노하고, 모든 성취를 저주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삶의 투쟁에서 벗어나 위안을 찾으려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런 것이 바로 동물적인 파괴의 본능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며, 유란시아 책에서 정직하게 스스로를 바라보고 하느님이 부여하신 무한한 가능성을 절대적으로 믿으라고 말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또 다시 태양이 힘차게 떠오르고 있으며, 무한한 기회는 여전히 변함없이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새해는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독자 게시판을 새롭게 시작합니다. 
이 시대의 올바른 경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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