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진리   16-02-20
최경곤   510
 

진리를 찾는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유란시아 책이 마지막 여정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오랫동안 여러 진리를 두루 공부하고 또 깊이 들어가서 탐구와 실천을 해 봤지만,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덩 분들이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합니다. 독자 분들의 한결같은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가끔씩 경이로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면 생각의 저변을 바꾸게 만드는 어떤 것이 다가옵니다만, 설명할 수 없는 그것이 영적 진리인지 아니면 지적 깨달음인지 분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나 자신을 변하게 만든다면 굳이 분간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러나 단순히 해답을 얻었다는 기쁨을 얻거나 혹은 어지럽던 머릿속이 밝아지고,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고 편안하게 되었다면 그런 일시적 감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진리란 무엇일까요. 참이니까 거짓과 반대되는 말이겠지요. 참이 아닌 것을 골라내고 아무리 깨끗이 치워도, 그것으로 참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찾는 것은 거짓이 아닌 것을 찾아나서는 것입니다. 거짓을 밝히고 구별하는 데에는 모든 사람들이 달인이지만, 거짓이 아닌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아주 드물지요. 유란시아 책은 모든 사람이 이러한 능력을 갖추도록 합니다.

이 책이 21세기 새로운 시대적 계시이지만,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주신 계시도 제대로 전해진 적은 없었지요. 진리는 시간을 뛰어넘는 것이니, 예수님 가르침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고, 변함없는 영적 진리들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살았던 12 제자들은 복음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지식과 문명이 엄청나게 발전한 지금이라면 재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더 왜곡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170:2.1 주(主)는 하늘의 왕국이,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의 진리와 그에 관계되어진 사람의 형제신분의 사실에 대한 이원적(二元的) 개념으로 시작되고, 그 개념 안에 중심을 이루면서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였다. 그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을 오랫동안 속박 받아온 동물적 공포로부터 해방할 것이고, 그와 동시에 다음과 같은 영적 자유를 누리는 새 생명의 자질이 부여되면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고 예수는 선포하였다:
  1. 새로운 용기와 증진된 영적 힘을 소유하는 것. 왕국 복음은 사람을 자유에 돌려놓았고, 그가 감히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2.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가난한 자들에게도 새로운 확신과 참된 위안의 메시지를 전했다.
  3. 복음은 그 자체가 도덕적 가치의 새로운 표준이었으며, 인간 행동을 재는 새로운 윤리적 잣대였다. 그것은 인간 사회의 결과적으로 생기는 새로운 질서의 이상을 묘사했다.
  4. 그것은 물질적인 것과 비교된 영적인 것의 선재적-탁월성을 가르쳤다; 영적 실체들을 영화롭게 하고 그리고 초인간적 이상들을 드높였다.
  5. 이 새로운 복음은 영적 달성을 삶의 참된 목적으로 높이 올렸다. 인간의 일생은 도덕적 가치와 신성한 존엄성의 새로운 자질을 부여받았다.
  6. 예수는 영원한 실체란 정의로운 땅에서의 분투의 결과(보상)라고 가르치셨다. 땅에서 사람의 필사자로서의 일시적 거주가, 고귀한 운명에 대한인지를 바탕으로 귀결되면서, 새로운 의미들을 획득하였다.
  7. 인간의 구원이 하느님의 구원받은 아들들의 끝없이 봉사하는 미래 운명 안에서 충족되고 실현되어질, 멀리-미치는 신성한 목적에 대한 계시임을, 새로운 복음이 확언하였다.
170:2.9 이들 가르침은 예수가 가르치셨던 왕국에 대한, 확대된 관념을 뒤덮는다. 이 위대한 개념은 세례요한의 초보적이면서 혼동된 왕국 가르침들 안에는 거의 포옹되지 않았다.
170:2.10 사도들은 왕국에 대한 주(主)의 말씀들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그 후의 왜곡들은, 신약 성서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예수는 그 때 잠시 동안만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과; 그가 곧 돌아와서 힘과 영광 속에서 왕국을 건설하실 것이라는 그 신앙─그가 육신 속에서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그들이 집착하였던 바로 그러한 관념─에 의해, 복음을 기록한 사람들의 개념이 얼룩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이 세상에 돌아오신다는 관념을 왕국의 설립과 결부시키지 않았다. 예수의 가르침과 “새 시대”가 일치되는 듯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은 채로 여러 세기가 지나갔다.
170:2.11 이 설교를 통하여 크게 노력한 것은 하늘의 왕국에 대한 개념을,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관념에 대한 이상(理想)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주(主)는 따르는 자들에게 “당신의 왕국이 임하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오랫동안 가르치셨다; 이 때 그는 그들에게 보다 실제적인 동의어인,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대신에 하느님의 왕국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진지하게 설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지 못하였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영적 힘, 영원한 실체를 얼마나 알고 있으면서 얼마나 진지하게 영적 자유 안에서 새 생명의 삶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우선은 1번의 가르침부터 목에 걸립니다. 깨달은 진리가 새로운 용기로, 그리고 영적 힘을 증진시키고 있는지 그것으로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그런 분이 많겠지만, 저는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종말에 메시아가 나타나 죄인을 구한다.'는 식의 세례요한의 초보적인 진리가 고작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밝히신 영원한 실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운명의 새로운 의미를 통감할 수 있을지, 그리고 구원받을 아들의 신성한 목적을 이해할 수 있을지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사도들도 이해하지 못했던 진리를 지나간 시대의 4번째 계시라고 해서 경시할 수는 없겠지요.

 
디오니스 16-02-21
 
예수님의 가르침은 영적 진리라서 깊은 의미를 다 이해하기는 힘듭니다. 예수님이 누구나 알기쉽게 하려 해도,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쉽게 하실 방법이 없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사도들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본문은, 말씀 내용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는 일단 땅에서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들처럼, 만약 지금도 개인의 믿음이나 신앙에서 완전히 벗어나기가 어렵다면, 나름대로의 깊은 진리를 깨치신 분일수록 유란시아 책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위대한 깨우침을 성취한 것입니다.

시간이 중분하다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겠습니다만, 보통은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자기 신앙 관점에서 자신도 모르게 내용을 재해석하고 있을 겁니다.
우현 16-02-23
 
170편 글 문장들이 무슨 뜻인지는 나름대로 쉽게 이해가 됩니다. 단순하게 그러려니 생각하면 사실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만, 막상 어떻게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고 체험할지를 생각하면 어렵지요.

예수님이 가르치신 이 말의 핵심은 아버지신분과 사람의 형제신분인데, 이 말은 한번만 들어도 누구나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심만 한다면, 결코 잊지않고 늘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도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요 문제는 그 진리를 바탕으로 7가지의 영적 자유를 체험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도 어렵다는 것이지요. 체험은 생각이나 결심이 아니라서, 7가지는 외우거나 목표로서 정한다고 달성되지는 않겠지요.

예수님이 지적하신 7가지 체험의 비결은 첫번째로 아버지와 형제에 대한 진리를 바탕으로 "동물적 공포로부터 해방"을 이루는 것인제, 이것이 "사람을 오랫동안 속박"한 것이라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동물적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2천년 전에 비하면, 문명이나 사회질서가 경제나 모든 것이 발달되어 공포를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늘 이기적 욕심 때문에 다툼이나 갈등은 끊이질 않지만, 동물적 공포에 속박당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7가지 영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아버지신분과 형제신분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싹트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알고 또 진리라고 깨닫는 말이지만 시간이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깨닫는지가 중요한데 결국은 왕국에 대한 실질적인 인식이 핵심이 되겠지요.

하느님의 왕국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얼핏 이해가 안가네요. 앞뒤 문장을 같이 읽어봐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유란시아 번역판 
실체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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