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란시아 책을 읽다보니 초(超)마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마음을 초월하라는 말은 아닌 것 같고,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책에서는 인간의 마음 작용이 일곱 가지 보조 마음-영의 기능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영은 직관-납득-용기-지식-조언-경배-지혜의 순서로 발현됩니다.
모든 생명체에는 마음이 있는데, 이들 중에서 처음 5개는 살아있는 생명체 중에서 동물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한계이며, 그 다음 6번 경배와 7번 지혜의 마음-영은 인간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생명이라는 현상이 완전하게 안정을 이루고, 생명체가 완전하게 정착하는 것은, 마음이라는 질료에서 다섯 번째인 조언의 영이 발현될 때입니다.
경배와 지혜의 마음-영은, 인간의 등장을 알리는 마음 기능이라서 생명에 직접 관계되는 것이 아닌, 질적인 표시기라고 합니다. 나타나자마자 우주적으로 연결성을 가지는데, 그 양은 생명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마음의 양과 질이 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생명 현상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 36:5.3 |
생명운반자 본부세계의 보조 영들의 중앙 거점들은 어떤 세계에서든지 그리고 지적 상태의 주어진 어떤 살아있는 유기체에서든지 보조자들의 마음 기능의 범위와 본질특성들을 생명운반자 감독자들에게 나타내 보인다. 이 생명-마음 정착들은 처음 다섯 보조자들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마음 기능의 완전한 표시기이다. 그러나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의 보조 영들─경배와 지혜─에 대하여서 이 중앙 거점들은 단지 질적인 기능만을 등재해 놓는다. 경배의 보조자와 지혜의 보조자의 양적인 활동성은 우주 어머니 영의 개인적 체험이 되는 것, 구원자별에 있는 신성한 사명활동자의 즉각적인 현존 안으로 등록되어진다 |
이들 마음-영의 발현을 생각해보면, 외부 환경에 반응하면서 체험과 학습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되는 마음은, 그것이 물리적 행동이나 판단을 이끌어내는 반응이라면 직관에서부터 조언의 마음-영이 기능하는 것입니다. 그보다 높은 경배와 지혜도 그 양적 기능들이 단지 우주 어머니 영의 체험이 되는 것이지, 지역우주 어머니와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높은 경배와 지혜의 마음 활동이 우주 어머니 영인 성령의 기능과는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 36:5.16 |
보조 마음-영들은 신성한 사명활동자, 거주되는 세계들의 성령, 개인적 현존의 영의 다양하고도 매우 높은 영적인 기능에 어떤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진화적인 사람에게 바로 이 영의 출현보다 기능적으로 앞서며 그것을 예비한다. 보조자들은 우주 어머니 영으로 하여금 지역우주의 살아있는 물질적 창조체들과의 다양한 접촉 그리고 그들에 대한 조정을 제공하지만, 전(前)개인적 차원들에서 활동할 때 그들은 최극존재 안에서 반향하지 않는다. |
성령에 앞서서 마음-영의 활동이 있어야만 하겠지만, 물질적 마음이 아무리 신성한 의식으로 신을 경배해도, 우주 어머니와 연결되는 차원은 일곱 마음-영이 활동하는 마음 차원이 아니고, 그러한 마음을 넘어서는 초-마음이라고 합니다.
| 36:5.15 |
체험으로부터 배우는 능력이 나타나기 전의 살아있는 마음은 주(主)물리통제자들이 사명을 베푸는 권역이다. 신성(神性)을 인지하고 신(神)을 경배하는 능력을 성취하기 이전의 창조체 마음은 보조 영들의 독자적인 권역이다. 창조체 지능의 영적 반응이 나타남으로, 그처럼 창조되는 마음들은 즉시 초(超)마음으로 되며, 순간적으로 지역우주 어머니 영의 영 순환주기들 안으로 회로가 연결되어진다. |
결국, 동물적 반응에 쓰이는 마음을 지나서 신성을 인지하고 신을 경배하는 수준으로 성장해도 그것은 마음-영들의 권역이기 때문에, 영적 반응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마음을 넘어설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지요. 초-마음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일곱 마음-영을 넘어서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신성을 인지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신성에 반응하고 실질적인 체험으로 조금씩 성취하는 것과 같겠지요, 그것은 가장 높다는 지혜의 마음보다도 더 높은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수준이 되면 현실에 속박되는 괴로움이나 혼란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맛볼 것입니다.